쉿! 비밀이에요!

인사동에서

by 승주연

인사동에 약속이 있어서 왔다가 시간이 좀 생겨서 인사동 구경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가게가 있었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망설이다가 주인아저씨 인상이 좋아 보여서 큰맘 먹고 들어갔다.


-어떤 제품이 보고 들어오셨어요?

-이 꽃다발이요.

-아, 이거 말씀이군요.

-우와, 정말 다양하고 예쁘네요. 여기 액자에 있는 것도 정말 예쁜데 이것도 판매용인가요?

-네, 저 빼곤 다 팝니다.

순간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배꼽 밑으로 보내고 간신히 대화를 이어갔다.

-네, 그럼 이걸 다 누가 만드나요?

-제가 만듭니다. 흥미로운 건 이걸 남자인 제가 다 만든다는 겁니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건 여자인 저에겐 이런 손재주가 1도 없다는 겁니다.

-네, 허허허.

-저 혹시 여기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려도 되나요?

-사실 디자인이 도용될까 봐 걱정은 되지만 올려보시죠.

-아, 그럼 올리지 말까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도 잡지 등을 보고 디자인을 참고하기도 하니까요.

-여기 이 이불이 들어있는 액자 찍어도 될까요?

찰칵, 찰칵, 찰칵.

-이왕이면 이걸 찍으세요. 각도랑 잘 맞춰서 잘 찍어보세요.

-앗, 네.

난 차마 내 손이 여러 방면에서 똥손이란 걸 말하지 못하고 그 가게를 나왔다.



그 가게를 나와서 계속 걷다가 실버 액세서리와 오브제를 판매하는 아주 위험한 가게를 발견했다. 다른 가게를 더 둘러보다가 다시 그 가게로 돌아와서 (난 이걸 운명이라 받아들였다) 결국 용기 내어 가게 안에 발을 들였다. 그다음은 무척 수월했다. 가게 점원은 친절했고, 다행히도 내가 가게에 들어온 후로 부부인 것 같아 보이는 남녀가 들어왔고, 그다음엔 관광객 같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사람이 많아지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물건을 꼭 안 사도 되겠다는 마음과 내가 눈여겨봐둔 귀걸이 (원석 밑에 긴 태슬이 몇 개 달린 귀걸이는 '나를 데려가요~'라는 사인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가격을 물어봐도 되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결국 나는 귀걸이를 들고 점원에게 물었다.

-이거 얼마예요?

-잠시만요.

점원은 귀걸이 가격을 모르는지 가격표가 적힌 두꺼운 파일을 연신 들여다보더니 급기야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사실 가볍게 가격을 물어보고 혹시라도 비싸면 안 사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인데 전화까지 하다니 일이 커진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직원이 말했다.

-15만 원이에요.

-아, 네. 생각보다 좀...


그런데 이때 밀물처럼 들어왔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려고 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뭐라고 사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예쁜 물건은 무척 많았고, 잘 찾아보면 괜찮은 물건도 있을 것 같았지만, 이번 달에 충분히 많은 액세서리를 샀으므로 더 사는 건 내 양심이 (양심 따위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소환해 본다) 허락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나도 썰물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가게를 나왔다.



가게를 나와서 인사동 거리를 걷다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어디야?

-집이지.

-난 인사동. 그런데 여기 예쁜 게 너무 많다.

-또 뭘 사려고?

남편은 인사동에 갔으면 그냥 올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설득을 하거나 회유를 해도 내가 들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수년간의 경험에 비추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체념한 듯 질문한 것이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잘 들어봐. 내가 액세서리 가게 옆을 지나가는데 정말 예쁜 귀걸이가 있더라고.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망설이다가 정말 큰맘 먹고 성큼 가게 안에 발을 들여놨지.

-그래서?

-그런데 다행히도 사람들이 내 뒤로 몇 명이 더 들어오더라고. 그래서 또 한 번 용기 내서 그 귀걸이 가격을 물어봤지.

-그래서?

-그랬더니 나는 가볍게 물어봤고, 금방 대답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점원이 가격표가 적힌 파일을 보더니 결국 못 찾았는지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라고.

-이런.

-그러니깐. 일이 그렇게 커질 줄 몰랐지. 불편한 마음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 때 즈음 점원이 15만 원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샀어?

-아니, 너무 비싸서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마침 다른 손님들이 우르르 나가는 거야. 그때다 싶어서 나도 얼른 가게를 나왔지. 휴...


#인사동 #약속 #산책 #구경 #액세서리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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