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평소에 지나치게 안전을 걱정하는 편이다. 고소공포증에 안전과민증까지 갖고 있는 내게 세상은 여간 위험한 곳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베어그릴스의 극한 체험 프로그램이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영상을 보면서 나는 늪지대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며, 우연히 정글에 가게 되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 나오면 공책을 꺼내서 적고 밑줄까지 치고 싶어 진다. 물론 그런 적은 없지만, 영상에서 소개하는 정보가 내겐 그 정도로 중요한 정보로 인식된다.
가족과 함께 여수에 여행을 갔을 때, 하필 남편과 딸이 여수에 왔으면 케이블카를 꼭 타야 한다며 케이블카를 타러 가자고 했다. 우리가 케이블카를 탈 때는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졌고, 보슬비까지 내리는 상황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설마 케이블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은 끔찍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바닥이 투명한 케이블카를 타자는 딸을 간신히 설득하고 협박해서 다행히 바닥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보슬비에 바람까지 불어서 케이블카가 흔들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구간을 이동하는 동안 케이블카는 꽤 자주 흔들렸고, 나는 하늘 위를 난다는 해방감이나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손톱만큼도 없었다. 잔뜩 사색이 돼있는 내게 옆에 앉아있던 딸(케이블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와 딸이 같이 앉고, 남편이 우리 맞은편에 앉았었다)이 내게 귓속말보다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버스 타고 있다고 생각해 봐요.''
당시 딸은 대여섯 살이었는데, 어려서 겁이 없는 건지 (14살인 지금도 딸에겐 고소공포증이 없다) 케이블카 타는 게 마냥 재미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리 달콤한 상상을 해도 내가 지상으로부터 최소 수백 미터 떨어져서 하늘 위에 떠 있는 현실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때 농담을 한답시고 남편이 거들었다.
''내가 당신 옆에 갈까?''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생각해서도 안되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지금도 충분히 흔들리고 불안정한데,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린다면? 오 맙소사!
''안돼! 거기 그대로 있어! 절대로 안돼!''
다행히 남편도 내가 진짜로 겁을 먹은 걸 알았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럴 생각은 없었는지 모르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본 여행 갔을 때도 굉장히 긴 돌다리를 건넌 적이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남편과 딸은 신이 나서 반대편까지 갔다가 왔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간신히 두 다리를 설득해서 돌다리의 중간쯤 되는 지점까지 가긴 했지만, 더 이상은 내 이성이 겁쟁이 두 다리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방탄유리, 방검복, 방수 원단에 꽂혀있다. 범죄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 사건 사고를 다룬 뉴스를 몰입해서 본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한때 잠깐이나마 우리 차 앞유리를 방탄유리로 바꾸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오늘은 가방을 고르다가 남편에게 유레카를 외치듯 말했다.
''여보, 이 가방 진짜 괜찮지? 디자인 어때? 나 이 브랜드 가방 쓰고 있는데 너무 좋더라고. 그리고 방수 원단이야!''
'방수'라는 단어를 들은 남편의 눈에서 광기를 보았다. 마치 내가 ''이거 방탄유리야!''라고 외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제발 좀 그만해! 우산도 안 쓰고 빗속을 다닐 일이 얼마나 있으며, 비가 안 오는 날도 만일을 대비해서 우산을 갖고 다니면서 당신 가방이 비에 흠뻑 젖을 일이 얼마나 되냐고! 지겨워! 제발 좀 그만해! 방탄! 방검! 방수!'
그래도 못 이기는 척 남편은 방수 원단으로 된 가방을 사줬다. 하긴, 나도 돈을 버니까, 나 대신 결제를 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제 그 가방과 함께라면 폭우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자동차 앞유리도 언젠간 방탄유리로 바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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