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을 위한 무질서
딸아이와 나는 라면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인스턴트식품이다 보니 특히 남편이 (부모 중 한 명은 이런 사고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나 딸이 라면 먹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남편의 눈을 요리조리 피해서 먹기도 하지만, 라면 하나 먹는 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무튼 이틀 동안 라면을 멀리했다는 뿌듯함과 지금쯤 라면의 MSG를 좀 넣어줄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하고 있던 때에 딸이 약속이나 한 듯이 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라면을 이틀 동안 안 먹은 데다 번역 원고도 거의 끝나가니 여러 모로 나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뜻으로 오늘 점심으로는 라면을 먹는 것이 좋겠어.’라고 생각하며 흔쾌히 함께 라면을 먹기로 했다. 다만 라면만 먹지 않고, 밥까지 말아먹다는 조건 하에 우리의 거래는 성사되었다. 하지만, 밥 정도로는 뭔가 조금 아쉬운 감이 있어서 평소에 야채를 잘 안 먹는 아이가 매운 라면을 먹으면서 다소 상쾌하고 아삭한 생무를 먹여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며 아이에게 ‘무’까지 먹어야 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예상과 달리 흔쾌히 무를 먹겠단다. 심지어 자기는 무를 좋아한다고, 그동안 무를 안 준 나를 원망(?)까지 하면서 말이다.
딸과 나는 그렇게 라면을 끓여서 사이좋게 먹었다. 좀 더 정확히는 딸은 *구리 컵라면을, 나는 봉지 라면을 끓여서 각자 먹고 싶은 방식대로 딸은 면을 다 먹은 후에 밥을 말아먹고, 맵다 싶을 땐 무를 아작아작 씹으면서 먹었고, 나는 봉지 라면에 양파와 팽이버섯, 계란을 넣어서 갓김치를 곁들여서 먹었다. 오늘따라 밥이 너무 찰지게 잘 돼서 밥도 살짝 넣는 ‘상’을 주면서 말이다. 사실 라면을 먹으면 라면의 높은 칼로리 때문에 밥은 잘 안 먹는데, 오늘은 뭔가 원고를 끝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어떤 형태로든 상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은 엉뚱할 수는 있지만, ‘밥’까지 말아서 라면을 먹었다.
이렇게 둘이 사이좋게 점심을 먹은 후에 만족스러운 듯 배를 두드리고 있는데, 딸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순간 습관적으로 ‘이 녀석 또 안방에 누워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딸아이를 부르면서 말한다. ‘Y야 너 어디야? 또 누워있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딸이 ‘저 지금 엄마 방에 있어요. 엄마 방에서 어떻게 누워요?’’ 그런다. 그러자 나는 방에는 자고로 바닥이라는 것이 있으니 얼마든지 누울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랬더니 딸이 ‘’ 엄마 방바닥 더럽잖아. 거기에 어떻게 누워?’’ 순간 안도와 민망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누워있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다는 것은 바람직한데,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닥이 더러워서라니 말이다. 나는 순간 며칠 전에 바닥을 닦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 바닥 며칠 전에 닦았어. 안 더러워’’라고 말했다. 그래서 바닥에 누우라는 뜻은 아니고, 그냥 나름 내 방바닥 편을 들어본 건데, 딸은 ‘’그래도 더러워’’라고 말한다. 그래,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랴, 딸이 누워있지 않고, 앉아만 있다면 이유는 어떻듯 상관없다고 생각하니 웃음도 나오고 마음이 묘하게 편안해졌다.
사실 내 방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서재이다. 하지만, 번역가의 서재라고 말하기엔 뭔가 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서재까지는 아니고, 그냥 ‘방’이라고 소심하게 표현해본다. 내 방의 벽면은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물론 책장에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다. 대부분은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러시아에서 나름 석사까지 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사 온 원서들, 사전류 (사전은 광적으로 좋아해서 러시아어 사전만 대략 60권이 넘는다. 게다가 사전은 읽을 대상이 아니라, 필요할 때 참고하면 되는 책이니 얼마나 부담이 없는가 말이다), 그리고, 내가 번역한 책, 번역하고 있는 책, 그리고 번역을 할 수도 있는 책들이 나를 사방에서 쳐다보고 있다. 내가 이미 번역해서 이 세상에 나온 책들은 나를 자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고, 번역하고 있는 책들은 ‘어서 번역 끝내지 않고 뭐하냐고!’라는 식으로 나를 재촉하는 것 같고, 미래에 번역할 수도 있는 책들은 서로 자기를 선택해달라고 조르는 듯하다. 책들만 질서 정연하게 정리돼 있다면 ‘서재’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겠지만, 내 방에는 원서, 역서, 그 외 다양한 전공 서적 외에도 용도가 다양한 러시아제 기념품, 볼펜, 연필, 러시아제 인형 혹은 언젠가는 쓰일 물건들이 비교적(?) 적합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 일부는 바닥에 서있고, 또 화장품 같은 경우는 대부분 내 발 밑에 있는 상자에 가둬두지만, 일부 반항끼가 있는 녀석들 혹은 내가 자주 사용하는 아이들은 가끔 바닥에 누워있거나 서있기도 한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무질서하다거나 어지러운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나름의 정리가 돼 있는 것이다. 물론 문제는 그 ‘정리’라는 것이 내가 정해놓은 틀 안에 넣고 생각하면 ‘정리’인 거고, 일반인들, 특히, 정리 정돈을 잘하는 사람이 내 방에 들어오면, 하나부터 열까지 꼬투리를 잡고, 책 한 권 한 권, 물건 하나하나가 왜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는지를 해명해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다 계획이 있다고. 내가 나름 정리해둔 거라고 말이다. 나름 일하는데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정리돼있다고 말이다. 그리곤 말할 것이다. 러시아어에 ‘’ 창작의 무질서’’라는 표현이 있는데, 창작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무질서가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말이다. 진정한 정리는 머릿속에서 하는 거라는 다소 황당한 변명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떠랴? 이 방에서 오늘도 나는 번역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나는 내 방이 좋다. 왜냐하면 내 방이고, 내 방은 나를 닮았고, 이 방에는 나만의 정리가 배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