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아봐야 알 수 있는 것

내가 이렇게 가볍다니?

by 승주연



남편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고, 나는 하필 불을 꺼서 어두운데 무언가를 집으려고 했는지, 뭘 하려고 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서 TV 쪽으로 걸어갔다. 순간, ‘우지직’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알기 위해 마치 눈과 코가 귀와 함께 무언가를 들을 수 있기라도 한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콧구멍에도 잔뜩 힘을 주면서 그 소리가 과연 어디에서 나는지 알아내려 애썼다. 설마 내가 무언가를, 그것도 깨질 수 있는 것을 밟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한 상태였다. 하지만, 순간 내 발 밑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깨달았고, 이내 그 소리가 그러니까 바로 발 밑에 깔린 녀석에게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무디거나, 내 사고가 느리거나, 무언가를 맨발로 깨뜨려본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 느낌이 무엇인지 몰랐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보다는 남편이 더 놀란 것 같았다.


남편: 이게 무슨 소리야?

나: 글쎄…

남편: (불을 켜며) 아니, 당신 거울을 밟았잖아!

나: 진짜? (‘거울을 밟는 느낌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진짜 내가 거울을 밟았네.

남편: 헉. 아니, 자기가 밟아놓고 모른단 말이야?

나: 그러니까. 내가 거울을 밟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했거나. 아니면 언제 내가 마지막으로 거울을 그것도 맨발로 밟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 느낌이 어떤 건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남편: 조심해서 발을 떼봐.

나: 알았어.

남편: 다행히 파편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붙어있네.

나: 내 발에 찔리지도 않았고.


그런데, 신기한 것이 양면 거울 중에 한쪽 거울만 깨진 것이었다. 그 순간 내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남편: 어? 그런데, 양면 중에 한쪽 면만 깨졌네?

나: 진짜! 와! 내가 이렇게 가벼웠다니!

남편: 뭐?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

나: 응, 지금이 바로 그런 말을 할 때인 것 같은데! 한쪽 발로 거울을 밟았는데, 양면 중 한쪽 면만 깨질 확률은 평생을 탈탈 털어도 몇 번 안 될 것 같거든! 우와! 나 굉장히 가벼운가 봐!


다행히도 파편은 튀지 않았고, 남편은 거울의 깨진 면에 조각조각 붙어있는 유리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종이와 봉지에 담아서 정리했다. 그날 나는 ‘하아, 쟤는 언제 철이 드는 거지?’라는 남편의 표정을 개념치 않고 아주 잘 잤다.


때론 거울을 밟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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