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외출을 해야 하는데 딸이 머리를 이틀 동안 안 감아서 나가기 싫다고 했다.
-딸, 우리 다 같이 외출할 거니까 준비해.
-엄마, 저 머리가 떡져서 나가기 싫어요.
-그럼 감으면 되겠네.
-안 감으면 저 안 나가도 돼요?
-아니, 다 같이 외출할 거야. 그러니까 신경 쓰이면 머리 감아.
월요일에 딸과 나는 딸 친구들과 함께 서울대공원에 가기로 했고, 마트에서 필요한 것들을 사기로 했기 때문에 함께 외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머리를 세면대에 대고 감아요?
-아니, 샤워기 틀어놓고 그 밑에서 감아.
-옷은 입고 감아요?
이때 나는 문득 참 신선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옷을 입고 샤워하는 상황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다.
-딸, 샤워기 밑에서 머리 감으면 머리카락만 젖을까?
-아니요. 다 젖겠죠?
-그리고 네가 스스로 머리를 감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옷 입고 머리 감은 적 있니?
-아니요.
-그런데 왜 갑자기 옷을 입고 감냐고 물어보는 거야? 너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네 경우는 머리 감을 때 온몸이 다 젖으니까 샤워하는 걸로 봐야 하는데, 보통 샤워할 때 옷을 입고 감을 땐 사람이 안 좋은 일을 겪어서 큰 충격에 빠졌을 때야. 이를테면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졌거나 무시무시한 공포에 휩싸였을 때지.
-그냥 옷을 입고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을까요?
-음... 그럴 수도 있긴 하지. 그런데 왜? 옷 입고 샤워하면 옷이 몸에 닿는 감촉이 어떨지가 궁금한 건가?
-그냥 그러고 싶을 때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오늘은 안 그랬으면 좋겠구나.
-왜요?
-너는 그냥 하고 싶은 날이 있고, 나는 그냥 안 그랬으면 좋겠다 싶은 날이 있는데 오늘이 딱 그런 날이야. 그러니까 평소대로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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