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한국이 경기가 안 좋긴 한가 봐!
공역자 싸샤 언니와 나는 내 모교인 안양대학교 러시아어과에서 주최한 연극제에서 처음 만났다. 싸샤 언니는 원어민 교수님의 친구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었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모두 뒤풀이 장소로 함께 이동했다.
당시 나는 3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러시아어로 어느 정도는 소통이 가능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겁이 없었다. 대화를 할 때 서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을 수도 있고, 물론 아무 생각이 없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자 쪽에 더 무게 중심이 실리는 것 같다는 강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뒤풀이 장소인 식당으로 이동한 후에 우리는 각자 앉을자리를 정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교수님 손님들은 모두 모여서 앉으셨고, 우리 역시 우리끼리 앉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어려운 러시아어까지 생각하면서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군가가 러시아 사람들과 함께 앉아야 한다면 큰 고민 없이 다들 나를 지목했을 것이다. 실력이라는 것이 도토리 키만큼의 차이였겠지만, 그나마 그중에 조금 나은 내가 그분들 옆에 앉았고, 싸샤도 그중 한 명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싸샤 언니와 남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띄엄띄엄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가 대화를 잘 이어가기 위해서 언니나 언니 남편의 인내심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그렇게 다소 힘들게 대화를 이어나갔고, 헤어질 때 즈음 언니가 나한테 자신의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어쩌면 그냥 ‘잘 가, 언제 또 기회가 있으면 또 보자’라는 인사 대신이었을지 모를 초대를 내가 진짜 초대한 것이라고 오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언니 집에 놀러 갔다. 그때가 1997년이었으니 언니와 나의 인연은 꽤 오래된 인연인 셈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언니와 함께 한국 소설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고 있고, 2017년에는 함께 제15회 한국문학 번역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물론 티격태격 싸우기도 많이 하지만, 우리 모습은 누가 봐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 동생이다. 그리고 우리는 수없이 많은 엉뚱한 에피소드들을 만들면서 지금까지도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상황은 바닷가에 있는 모래알 만큼이나 흔했다.
한 번은 언니와 내가 서울에서 만나서 같이 밥 먹고 수다를 떤 후에 언니가 나를 집에 바래다준다고 해서 언니 차를 타고 안산 집으로 가고 있었다.
싸샤: 주연, 창문 좀 열어줘.
나: (창문을 열면서) 담배 좀 안 피우면 안 돼?
싸샤: 솔직히 암 수술받고 나서 의사도 담배 끊으라고 하는데. 담배를 끊고 나서 스트레스가 더 클지, 담배로 인해서 몸이 나빠지는 것이 더 나쁠지 잘 모르겠어. 솔직히 스트레스가 더 클 수도 있잖아?
나: 음… 일리 있네. ㅋ
싸샤: 주연, 그런데, 한국이 경기가 많이 안 좋긴 한가 봐.
나: 왜?
싸샤: 5시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어둡네.
나: 언니, 선글라스 벗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