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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연 Feb 01. 2021

오스카상

설마... 



문체부 산하의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주최하는 번역출판 워크숍에 가기 위해 아침부터 나와 공역자인 싸샤 언니는 한껏 멋을 내고 만났다. 우리는 물론 오랜만에 바람을 쐬는 것도 그렇고, 날씨도 마침 좋아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 둘 중 그 누구도 설마 우리가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잃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 했다. 


언니는 검은색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를 했고, 나도 우리 집 장롱 안에서 상위 10위 안에 드는 옷 정도를 골라 입고, 몸 구석구석 걸거나 낄 수 있는 모든 공간을 활용해서 최대한 많은 액세서리악 걸치고 만났다. 언니 남편은 언니가 그렇게 꾸미는 모습을 보고 '오스카상이라도 받으러 가나 보지?'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언니 차는 아직 쓸만하긴 했지만, 언니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 상으로 서울 한복판은 허허벌판이거나 논밭 같은 곳이 나오곤 했다.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는 걸 알지만, 언니 남편이 비밀 번호를 걸어놓고, 번호를 까먹는 통에 몇 년째 업그레이드를 못 했다고 한다. 나는 뭐, 그러려니 했다. 그럴 수도 있고, 설마 이것 때문에 행사 장소를 못 찾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융통성이 없고, 길을 잃으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을 생각을 못 했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본의 아니게 서울 시내를 드라이브했다. 


길을 찾는 데 급급했던 우리는 행사가 끝나가는 시간이 되도록 서울 시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고, 끝내 행사장을 찾지 못했다. 너무나 황당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속상함보다 쪽팔림이 더 컸다. 문득 언니 남편이 한 '오스카 상이라도 받으러 가는 거야?'라는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사실 우리 둘 모두 의상으로 보면 오스카상을 받으러 가도 괜찮을 정도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스카상은 고사하고, 번역원 행사장 위치도 몰라서 헤매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근처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싸샤 : 주연, 우리 이 일은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하자. 우리 남편이 알면 나를 '닭대가리'라고 놀릴 거야. 


나: 알았어. 언니. 나도 우리 남편한테는 오늘 행사 잘 다녀왔다고 말할게. 


물론, 나는 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그날 일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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