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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연 Feb 08. 2021

과정과 결과  

김과 밥에 관하여 



내일 수정한 역자교를 출판사에 보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이 조금 분주했다. 분주했다고 해도, 절대 무리해서 일찍 일어나거나, 잠을 설치는 등의 행위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먹고 자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므로, 절대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지 않는 편이다) 평소와 같이 7시에 눈을 떠서 30분 이상 침대 위에서 밍기적거리다가 팔과 다리를 달래서 겨우 침대에서 일어났다. 세수하고 평소처럼 내 방 컴퓨터의 전원을 켠 후에 보통은 아무것도 안 하지만, 오늘은 분주한 마음 때문에 역자교를 몇 페이지 검토했다. 이런 일은 솔직히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고, 딸과 먹을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데, 메뉴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딸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안했다. 


나: 오늘 점심에 돈가스 먹을래 아니면, 두부 구워줄까? 


딸: 그래도 두부보다는 돈가스가 낫겠죠. 돈가스 해주세요! 


나: 좋아! 


나는 인스턴트 돈가스의 매뉴얼을 보고, 그대로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조리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치즈 돈가스의 치즈가 늘어나는 건 고사하고, 녹지도 않았다. 결국 딸은 돈가스를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나는 마침 상 위에 있던 김에 밥을 싸서 먹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딸이 김에 밥을 싸 먹지 않고, 밥 따로 먼저 입에 넣고, 그런 다음에 김을 따로 입에 구겨 넣었다. 그걸 본 내가 딸에게 말했다. 


나: 보통은 김에 밥을 싸 먹는데. 


딸: 저는 이렇게 먹는 게 좋아요. 


나: 왜? 


딸: 그러면 김의 바삭함을 마지막 순간까지 느낄 수 있거든요! 


나: 아하! 하긴, 밥과 김이 입 밖에서 만나든지, 입 안에서 만나든지 어디서든 만나기만 하면 되지.


딸: 그렇죠. 


그리고 딸이 내 표정을 보면서 물어본다. 


딸: 엄마, 이 대화도 브런치에 올릴 거죠? 


나: 오~ 어떻게 알았어? 올려도 돼? 


딸: 네, 마음대로 하세요! 이제 엄마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딸아이와 대화를 하는 동안 요즘 들어서 특히 이렇게 '흐르는 강물같이' 잔잔한 일상과 그 일상 속에 녹아든 대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문득 깨닫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반지 사진은 내가 작가에게 디자인을 제안해서 작가가 제작해준 ''나무 그림이 들어간'' 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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