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 밥에 관하여
내일 수정한 역자교를 출판사에 보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이 조금 분주했다. 분주했다고 해도, 절대 무리해서 일찍 일어나거나, 잠을 설치는 등의 행위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먹고 자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므로, 절대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지 않는 편이다) 평소와 같이 7시에 눈을 떠서 30분 이상 침대 위에서 밍기적거리다가 팔과 다리를 달래서 겨우 침대에서 일어났다. 세수하고 평소처럼 내 방 컴퓨터의 전원을 켠 후에 보통은 아무것도 안 하지만, 오늘은 분주한 마음 때문에 역자교를 몇 페이지 검토했다. 이런 일은 솔직히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고, 딸과 먹을 점심을 준비해야 하는데, 메뉴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딸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안했다.
나: 오늘 점심에 돈가스 먹을래 아니면, 두부 구워줄까?
딸: 그래도 두부보다는 돈가스가 낫겠죠. 돈가스 해주세요!
나: 좋아!
나는 인스턴트 돈가스의 매뉴얼을 보고, 그대로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조리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치즈 돈가스의 치즈가 늘어나는 건 고사하고, 녹지도 않았다. 결국 딸은 돈가스를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나는 마침 상 위에 있던 김에 밥을 싸서 먹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딸이 김에 밥을 싸 먹지 않고, 밥 따로 먼저 입에 넣고, 그런 다음에 김을 따로 입에 구겨 넣었다. 그걸 본 내가 딸에게 말했다.
나: 보통은 김에 밥을 싸 먹는데.
딸: 저는 이렇게 먹는 게 좋아요.
나: 왜?
딸: 그러면 김의 바삭함을 마지막 순간까지 느낄 수 있거든요!
나: 아하! 하긴, 밥과 김이 입 밖에서 만나든지, 입 안에서 만나든지 어디서든 만나기만 하면 되지.
딸: 그렇죠.
그리고 딸이 내 표정을 보면서 물어본다.
딸: 엄마, 이 대화도 브런치에 올릴 거죠?
나: 오~ 어떻게 알았어? 올려도 돼?
딸: 네, 마음대로 하세요! 이제 엄마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딸아이와 대화를 하는 동안 요즘 들어서 특히 이렇게 '흐르는 강물같이' 잔잔한 일상과 그 일상 속에 녹아든 대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문득 깨닫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반지 사진은 내가 작가에게 디자인을 제안해서 작가가 제작해준 ''나무 그림이 들어간'' 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