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주연 Feb 09. 2021

여보, 준비해.

당근 마켓




나는 사실 일단 밖에 나갔다 따뜻한 집 안에 들어오면 웬만큼 솔깃한 제안이 아니면, 집 밖을 안 나간다. 요즘 계속 원고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나는 거의 집 밖으로 안 나갔고, 오늘 드디어 출판사에 내가 검토한 역자교를 보내고 홀가분한 마음에 백화점에 가서 바람도 쐬고, 그리고 집에 들어왔다. 집에 도착한 나는 입었던 옷을 빨기 위해 욕실 앞에 놔뒀다. 빨래의 다음 행선지는 베란다 빨래통인데, 아직은 보류라기보다는 그냥 귀찮아서 잠시 욕실 앞에 눕혀놨다. 그런데 남편으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남편: 당근 마켓에 올려놓은 고대기 산다는 사람 있으니 준비해주삼. 


나: 하아, 지금 집에 들어왔는데. 


남편: 집 앞에 거의 다 왔다니까 이제 나가주삼. 


나는 못마땅하지만, 빨려고 욕실 앞에 눕혀놓은 블라우스와 내의를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갔다. 

남편: 접선은 했어? 


나: 응. 


그리고는 설마 이 후로도 나갈 일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한테서 또 카톡 메시지가 왔다. 


남편: 장난감 내놓은 거 사러 온대. 나갈 준비하삼. 


나: 무슨 장난감? 언제? 어디로? 또? 


질문의 수는 불만 지수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었다. 영하권의 추운 날씨에, 그것도 오후도 아니고, 이제 쉬려고 편하게 옷을 입고 있는데, 무려 두 번이나 밖에 나갔다 오라는 부탁인지 통보인지 모를 남편의 문자를 보고, 나는 이미 옷을 주섬주섬 입고 있었다. 나가려고 하는데, 딸이 문을 열고 말한다. 


딸: 엄마, 그 돈 받으면 저 줘요. 그 장난감 제 거니까요. 


나: 뭐래! 


돈을 받아 들고 터덜터덜 걸어와서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딸이 현관문의 걸쇠를 걸어놓았는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 뭐야? 이걸 왜 걸어놓은 거야? 


딸: 혹시 모르니까요. 위험하잖아요. 엄마 안 계신데 누가 들어오려고 하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이 와중에 딸은 길어야 2-3분 정도 집을 비우는 이 틈에 누군가가 집에 침입할 때를 대비해서 걸쇠를 걸어놨다는 뜻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남편과의 카톡이 우선이었다. 더 이상은 밖에 나가는 상황을 만들지 못하도록 막아야했다. 


나: 더 이상 오늘은 그 어떤 것도 팔지 마삼. 


남편: 잘했어! 아주 칭찬해! 오늘은 더 이상 없어. 


하지만, 그러고도 마음이 편치 않은 나는 아직도 옷을 입은 채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속으로는 장난감 값은 누가 가지는 게 좋을지 생각 중이다. 장난감의 원래 주인인 딸이 가지는 것이 좋을지, 거래를 주선한 남편이 가지는 편이 좋을지, 결국 장난감을 갖고 나가서 구매자에게 건넨 내가 가지는 것이 좋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당근마켓 #한밤중 #자난감 #걸쇠는왜 



작가의 이전글 과정과 결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