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주연 Feb 10. 2021

뜻밖의 호사...

지상 교통수단 

오늘 새로운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대표님과 미팅을 끝낸 후에 나는 발걸음도 가볍게 근처에 있는 롯데백화점에 들렀다. 뭘 사겠다는 강한 의지 같은 것은 아니고, 봄에 살 옷과 관련해서 시장조사도 하고, 트렌드 분석도 할 겸 (어차피 내 마음대로 입겠지만. ㅋ) 들른 것이었다. 


그래도 1년 동안 함께 할 프로젝트와 관련된 계약한 것을 기념해서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무언가를 샀으면 하는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백화점 식품 및 디저트 코너를 둘러보다가 나는 예쁜 마카롱을 발견하고, 4개를 샀다. 물론 이때도 나는 제일 잘 나가는 맛을 물어보고, 내가 사고 싶은 맛을 샀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백화점을 나섰다. 그런데, 범계역 개찰구 앞에서 역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확성기에 대고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내용은 이랬다. 서울역 쪽에서 장애인들이 시위를 하기 때문에 범계역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대체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상황을 이해하고 말고를 떠나서 팩트만 추리면, 그러니까 나는 지하철로 집에 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급히 검색을 해보았지만, 지하철 말고는 다른 대체 수단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기로 하고 밖으로 나갔다.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뒤에 서서 나 역시 드문드문 도착하는 택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택시를 타고 가더니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목적지를 얘기하고 택시에 탔다. 


택시에 타서는 택시 기사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남편: 당신 지금 어디야?


나: 나 지금 도로 위. 


남편 : 뭐? 무슨 도로 위? 도로 위에는 왜 있는 거야? 


나: 지상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집에 가는 중이야. 


남편: 뭐? 무슨 말이야? 


나: 택시 타고 간다고. 


남편: 갑자기 택시는 왜 탄 거야? 


나: 그러니까 서울역에서 장애인들이 시위를 해서 범계역에서 열차 운행이 중단됐대. 


남편: 무슨 말이야? 서울역에서 시위하는데, 범계역에서 왜 열차가 운행을 안 하는 건데? 


나: 나도 몰라. 그냥 그렇대. 


남편: 아 몰라. 나 지금 운전해야 돼  끊어. 


나: (혼잣말로) 아니, 그럼 전화는 왜 한 거야? 


무슨 나비 효과도 아니고, 나도 서울역에서 시위를 하는데, 범계역에서 열차 운행이 중단된 그 상황이 이해가 안 갔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편하게 집에 갈 수 있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내 가방 안에는 내가 조금 전에 서명한 따끈따끈한 계약서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오랜만에 택시로 집에 가는 호사도 나쁘지 않은 셈이다. 


*사진은 선물 받은 마이클 코어스 반지의 착용 샷인데, 이 반지를 끼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작가의 이전글 여보, 준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