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치과에서

by 승주연



엄마가 나를 가지셨을 때 10달 동안 과일만 드셔서 엄마 몸도 많이 상하셨지만, 내 이빨의 상태도 썩 좋지는 않다. 그러니까 엄마가 과일을 많이 드셨는데, 과일은 당 성분이 많고, 과일을 많이 먹는 것은 사탕 여러 개를 입에 물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그 당 성분은 엄마의 배속에 있던 나한테까지 전달됐고, 엄마의 배속에 갇혀서 양치질도 못하는 나는 꼼짝없이 엄마가 나한테 내려보내는 사탕에 준하는 당을 계속 날름날름 받아먹은 셈이다. 아무튼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가 약했던 것 같다. 물론 관리를 잘 못한 내 탓도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말이다. 원래도 잘 썩는 데다(?) 튼튼하지도 않은 내 치아는 남들보다(?) 더 잘 썩었고, 이가 썩어서 치과에 갈 경우 대부분은 신경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신경치료라는 것은 신경을 죽여서 치아를 무언가로 덮는 것인데, 문제는 신경이 생각보다 빨리 안 죽는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치과에 갔다. 예약 시간에 도착한 나는 접수를 하고 잠시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원장님께 잘 보일 요량으로 오늘은 뇌물까지 하나 챙겨 왔다. 내가 번역한 ''비행사''가 얼마 전에 출간되었고, 좀 덜 아프게 해달라고 부탁도 할 겸 가져온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서 간호사 언니한테 원장님께 전해달라고 책을 건네고는 의자에 누웠다. 그런데, 간호사분이 누우라고 하고는 마취도 없이 치료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 저, 잠시만요. 오늘은 마취 안 하시나요?


간호사 1 : 네, 신경의 상태를 보면서 치료를 해야 해서요.


나: 그러니까, 신경이 얼마나 죽었는지 확인하려면 마취를 안 한 상태에서 해야 한다는 말씀이신 거죠? 신경을 막 찌르면서요?


간호사 2: 왜, 무슨 일이야?


간호사 1: 아프실지도 모르니까 마취를 해주셨으면 하세요.


간호사 2: 아, 그게 상태를 좀 확인을 해야 해서요.


나: 아, 그러면 할 수 없죠. 정말 많이 아프지는 않겠죠?


그렇게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눴고, 간호사는 본인 몫의 치료를 했다. 잠시 후 원장님이 오셨다.


나: 원장님, 혹시 마취하고 하면 신경 상태를 확인하실 수가 없나요?


원장님: 아무래도 정확도가 좀 떨어지겠죠.


나: 많이 아프지는 않겠죠?


원장님: 혹시라도 많이 아프시면 손을 드세요.


나: 네.


이때부터 나는 나의 모든 신경을 신경 치료를 받는 치아로 파견했다. 순간이 영원 같고, 1분이 1시간 같은 순간이 지나고 있었고, 생각보다는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욱’하는 통증이 나를 덮쳤다. 충분히 대비했고, 마음의 준비까지 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신경의 반응이 어렵고 낯설었다. 나는 한쪽 손을 다급하게 들고 말했다.


나: 원장님, 아파요! 혹시 이거보다 더 아플 수도 있나요?


원장님: 거의 다 했어요. 그것보다 아프지는 않을 거예요.


여전히 온몸에 잔뜩 힘을 주면서 치료를 받고 있던 중에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욱’하는 통증이 나를 흔들었다. 나는 그 순간 앞으로 얼마나 많이 이런 통증이 나를 덮칠지, 통증의 강도는 대략 얼마나 될지, 정말 마취를 안 하고 해도 될지와 같은 수많은 질문들을 머릿속에 넣고 이 중에 어떤 질문을 하는 것이 더 똑똑해 보일 지를 저울질해봤다.


나: 악! 원장님, 마취하면 안 될까요?


원장님: 다 했어요! 지금 하면 억울하실 텐데요?


나: 아, 끝났다고요? ㅋ


원장님: 네. 치료 끝났어요.


앞으로 몇 달 동안 나는 이렇게 어이없는 대화를 이어가면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치료를 받는 동안 내 삶은 치과 밖에서 보내는 행복한 시간과 치과 안에서 치료받는 ‘긴장되는’ 시간으로 구성될 터였다.


*사진은 선물 받은 러시아제 초콜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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