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자”는 말의 무게

by 랑이네 글밥집

“호두야, 집에 가자.”

산책이 끝날 무렵 무심코 뱉는 이 말이, 내게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한때 우리 가족의 짐은 이삿짐센터로 가고, 우리는 여관방으로 흩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감각이 사람을 어디까지 불안하게 만드는지,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나태주


해가 떴구나 출근해야지

해가 지는구나 어, 퇴근해야지

집에 돌아와 티브이 보다가

졸립구나 그래 자야지

이렇게 살아도 우리네 하루하루는

거룩하고도 아름답고 가득하고

성스러운 것입니다.





대학 졸업반 무렵, 우리 가족은 집을 잃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함께 살던 아파트는 사채업자의 손에 넘어갔고, 우리는 작은 월세집으로 옮겨야 했다. 그러나 그것마저 오래가지 못했다. 보증금까지 빼앗기며 이사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의 짐은 이삿짐센터로 가고, 우리는 여관으로 갔다.


낯선 여관방에서의 생활은 ‘집’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때서야 알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집이란 단순한 벽과 지붕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관방에는 세면도구 몇 개와 옷 한두 벌만 있었다. 모든 것이 임시였고, 삶은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살아간다기보다 시간 속에 잠시 떠 있는 기분이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감각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 익숙한 바닥을 밟고, 익숙한 냄새를 맡는 순간. 그 사소한 장면들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안다. 지금의 나에게 집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선다. 그곳은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지친 하루를 벗어던지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해도 되는 자리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김기사 또한 어린 시절 ‘스위트홈’이라는 걸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의 집은 단 한 번도 스위트홈이었던 적이 없었다.


판잣집 같은 집에서 살았고, 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막 개천이 흐르던 곳이었다고 했다. 그마저도 집이라고 편안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늘 술에 절어 있던 아버지가 난동을 부리면 가족들은 수시로 집 밖으로 쫓겨났고, 추운 밤 바깥에서 떨며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어느 날 짧게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가 왜 ‘집’이라는 말 앞에서 유난히 조용해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에게 집은 쉬는 곳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퇴근 후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그곳에서 누구도 난동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저녁을 먹고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것. 그 평범한 일상이 그에게는 얼마나 낯설고 귀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이 집을 스위트홈으로 지켜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지런히 정돈된 청소, 늘 따뜻하게 차려지는 밥상. 물론 우리가 말하는 건 고공행진하는 부동산이나 ‘내 집 마련’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서울에서 임대로 살고, 자가는 없는 중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따뜻한 공간이다.

돌아오면 숨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오늘 하루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안도감을 허락하는 자리다.


우리는 종종 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숨 쉬는 것처럼, 밥을 먹는 것처럼.

하지만 나에게 집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한때 집이 없던 시절을 지나온 나는, 집이란 하루를 하루답게 살아가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매일 그 평범한 말을 조심스럽게, 고맙게 꺼낸다.


“집에 가자.”


이 말은 공간으로의 이동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돌아와야 하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이 말을 사랑할 것이다.


오늘 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당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서 평안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