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크리스마스

번듯하지 않은 삶이 한 묶음이 되는 새벽

by 랑이네 글밥집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다 깜빡 잠든 아이도 아닌데, 새벽 다섯 시에 눈이 떠졌다.


창밖은 아직 잉크 빛이다. 김기사 출근까지는 고작 두 시간이 남았다.


“내일 추워서 라면 끓여 먹게 도시락 싸지 마.”


어젯밤 무심히 던진 그 한마디가 가슴 한구석에 덜컥 걸려 있었다.

그 말은 배려였을까, 아니면 지독한 피로의 항복이었을까.


그래도 성탄절인데. 모두가 축제처럼 잠든 이 새벽에도 어김없이 물류의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사람에게, 빨간 날의 시작을 라면 국물로 채우게 할 수는 없었다.


다시 앞치마를 맸다.

질척거리는 밥물 때문에 한 차례 실패했던 지난밤의 밥을 뒤로하고, 신중하게 물을 맞춰 새로 밥을 안쳤다.

스팸땡고추김밥, 어묵꼬치, 닭강정, 그리고 장어구이.

정성이라 부르기엔 투박한 메뉴들이 도시락 통에 차곡차곡 담겼다.


요 며칠, 산타처럼 밤늦은 배송을 이어가느라 김기사의 입술은 부르터 있었다.

어제 잠깐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단편 영화 속 왕따 당하는 주인공을 보며 학교는 정글이라 말하는 내게, 그는 그래도 그때가 좋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뭐가 좋았어? 부모님 밑에서 친구들이랑 논 거?”


“그치. 그게 좋았지.”


그 대답 뒤에 나는 말을 아꼈다.


가장(家長)이라는 이름으로 십수 년째 밥벌이의 정글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에게, 부모의 울타리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유일한 낙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고단함을 알기에 도시락 뚜껑을 닫는 내 손끝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새벽을 여는 이들의 노동 위에 오늘이라는 하루가 시작된다.


그 묵묵한 뒷모습 위에 임영준 시인의 문장을 기도처럼 얹어본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임영준


잠시 잊어야지

철없는 세속


영혼을 울리는

탄일종으로

시름 따위는

함께 묻어야지


번듯하지 않아도

오만이 짓눌러도

한 묶음 되어야지


그래도

은총 가득한

크리스마스인데




‘번듯하지 않아도, 한 묶음 되어야지'


오늘 새벽에는 이 구절이 유독 아프고도 따뜻하게 읽혔다.


우리의 삶이 화려한 트리 아래 놓인 선물 같지는 않아도, 질척이는 밥물을 다시 맞춰 지어낸 김밥처럼 서로가 서로를 눅진하게 붙들고 ‘한 묶음’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게 아닐까.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화려한 조명 아래가 아니라, 차갑고 낮은 빈 구유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른 새벽을 열며 일터로 향하는 투박한 손들,

라면 한 그릇의 고독 대신 서로를 살피는 한 묶음의 마음을 선택한 이 새벽, 우리네 투박한 일상 위로 조용한 은총이 머물기를 바란다.


성탄절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