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칫거리는 마음으로 끓인 애호박찌개

by 랑이네 글밥집

새해 첫날, 추위가 매섭다.


공휴일이라 자동으로 알람이 꺼진 줄도 모르고 한 시간 늦잠을 잔 김기사는, 동료의 전화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여덟 시쯤 출근했다. 연휴의 첫날이자 새해의 시작인데도 그는 여전히 매서운 추위 속으로 짐을 이고 지고 나르러 간다.


그를 보내고 나는 호두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왔다. 헬스장에서 몸을 움직이고 돌아와 부엌에 선다.


오늘은 내가 먹고 싶은 애호박찌개를 끓였다.

김기사는 물에 빠진 고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늘 그의 도시락과 저녁 밥상을 기준으로 메뉴를 정해왔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이 얼큰하고 구수한, 돼지고기 듬뿍 넣은 애호박찌개가 사무치게 먹고 싶었다.

거실에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틀어두고, 손에는 박웅현의 『천천히 다정하게』를 들었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동안 책장을 넘기다 문득 멈칫한다.


같은 시간, 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다른 풍경 속에 있다.

김기사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 몸을 쓰고 있고, 나는 따뜻한 집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찌개를 끓인다.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서 시간을 누리다 보면, 추위와 더위 속에서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이 떠올라 마음이 자주 멈칫거린다.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가슴에 어제 먹은 고구마가 얹힌 것처럼 마음이 쉽게 편해지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런 멈칫거림이 잦아지는 것이 때로는 서글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찌개 냄비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이 멈칫거림마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면, 오늘만큼은 나를 조금 먼저 돌봐도 되지 않을까.


보글거리는 국물을 저으며 마음속으로 몇 글자를 끄적인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하루를 정직하게 건너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의 추위가 나의 따뜻함 때문에

미안함이 되지 않기를.


나의 애호박찌개가

그의 고단한 하루를 맞이할

작은 다정함이 되기를.


새해 첫날, 나는 여전히 멈칫거리면서도 기어이 나를 돌보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거창한 다짐은 잠시 미뤄둔 채, 갓 끓인 찌개 한 숟갈을 뜬다.


걱정과 미안함이 마음 한구석에 여전한데도,

찌개는 술술 잘도 넘어간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