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의 공부가 결국 ‘김기사’를 향한 것이었다

불안한 뇌를 잠재우는 가장 쉬운 방법, 손잡기

by 랑이네 글밥집

오늘 우연히

James Coan의 TEDx 강연 〈Why We Hold Hands〉를 들었다.

강연 속 한 장면이 유독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한 군인이 실험에 참여한다.

불안을 유발하는 자극 앞에서 그는 아내의 손을 잡는다.

그 순간, 그의 뇌는 위협을

‘덜 위협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아내의 손은

그에게 단순한 신체 접촉이 아니었다.

폭풍 같은 기억과 불안을 잠재우는

가장 안전한 항구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문득 김기사가 떠올랐다.


김기사의 몸에 남은 이야기


김기사는 험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집 안에는 늘 폭력과 공포가 감돌았다.


사랑과 보호보다

두려움과 긴장을 먼저 배워야 했던 아이.


결혼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의 몸 어딘가에는

그 시절의 긴장이 여전히 단단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군인의 아내처럼

김기사의 손을 자주 잡아주는 다정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강연을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김기사에게 건네야 할 것은

단순한 ‘손길’이 아니라

정서적 안정감이라는 것을.



여기서는 네가 안전해.
괜찮아.
너는 혼자가 아니야.



아이들에게는 늘 습관처럼 해오던 이 말을

나는 과연

김기사에게도 전하고 있었을까.




24년의 공부, 그리고 유레카


손을 잡는다는 건

뇌의 스트레스 반응을 낮추는 생리적 행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손을 잡는다는 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지지하고,

곁에 있겠다는 약속이다.


이 대목에서

또 하나의 유레카가 왔다.


내가 김기사에게 되어주어야 할 존재는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라기보다

그의 삶에서

정서적으로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아이들에게 그러하듯이.


물론,

이런 유레카가 왔다고 해서

내가 당장 천사 같은 아내가 되는 건 아니다.

어제도 버럭 했다.

쓰레기 버리는 일로.

(말 참 안 듣는 건 여전하다.)


그래도

그를 이해하려는 시도 하나가

내 안에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은 조금 다른 날이다.



김기사와 나의 유레카


김기사와 결혼한 지 24년째.

영유아 교육과 아동가족학을 공부해 온

나의 긴 시간을 돌아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공부와 사유가

결국은

김기사라는 한 사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나의 여정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의 어린 시절,

그의 상처,

그의 몸에 남은 굴곡진 이야기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

여전히 이해하는 중이다.


아마 우리의 삶은

서로의 이야기를 조금씩 알아가기 위해

함께 걸어가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손을 잡는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훨씬 깊고 묵직한

사랑의 언어였다.


거칠고 단단해진 그의 손등 위로, 내 마음 한 자락을 가만히 얹어보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