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의 밥상

인생을 꼭 껴안아 본 사람만이 아는 낮은 행복에 대하여

by 랑이네 글밥집

나의 행복 역치는 아주 낮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겁 없이 풍족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부자 동네에서 초·중·고와 대학까지 마쳤고,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 결핍은 제게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것이 당연했기에, 사실 무엇이 진짜 행복인지조차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삶은 예고 없이 방향을 틀었습니다.

대학 졸업 직전 집은 무너졌고, 우리 가족은 길거리에 나앉았습니다.

이사 갈 월셋집조차 들어갈 수 없어 여관방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깨달았습니다.

저녁이면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내 몸 뉘일 방 한 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를요.


​결혼 후의 삶은 더 낯선 세계였습니다.

화이트칼라들 틈에서 자란 제게, 몸으로 정직하게 일하는 '블루칼라' 남편과의 삶은 치열한 도전이었습니다.

가난과 학대 속에 자란 남편과 살을 맞대고 아이를 키워내며, 제 안의 '행복 역치'는 서서히, 그리고 아주 낮게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행복의 문턱이 낮아지니 세상은 온통 감사한 일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저는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수전만 돌리면 쏟아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일 때마다 매일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 따뜻한 샤워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난했던 시절, 아이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타며 박물관을 누비던 시간, 셋이 둘러앉아 치킨 한 마리에 세상을 다 얻은 듯 웃던 그 소박한 저녁들이 제 인생의 진짜 황금기였음을 이제는 압니다.


​오늘 저녁, 남편을 위해 오징어볶음과 홍합탕을 차렸습니다.

오징어 두 마리에 오천 원, 홍합 오천 원.

단돈 만 원으로 차려낸 푸짐한 밥상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부자가 됩니다.


​추운 날, 작은 경차 안에서 좋은 음악을 들으며 느끼는 진공 상태의 평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새롭게 갱신되는 행복. 우연히 만난 좋은 문장 한 줄에 "아, 내가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가" 감탄하는 마음.


​결론은 하나입니다.

나의 행복 역치가 매우 낮아졌다는 것.


그래서 나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매일 부자가 됩니다.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제가 누린 따뜻한 밥상처럼, 여러분의 일상 속에도 숨어있는 낮은 행복들을 꼭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모두 행복이 갱신되는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