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위해 국자를 든 세상 모든 부엌의 주인들에게

오롯이 나를 위한 한 끼

by 랑이네 글밥집

흑백요리사 2에서 ​최강록 셰프가 말했다.

셰프들은 정작 자신을 위해 요리하지 않는다고.

남을 위해 화려한 접시를 내고 돌아와,

본인은 남은 식재료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고.


​타인을 축하하기 위해 매일 케이크를 굽는

내 제빵사 친구도 그렇다.

정작 자기 생일에는 케이크를 굽지 않는다.


​자정이 넘은 시각,

몸은 부서질 것 같아도

내일 아이들이 먹을 반찬을 만드는

수많은 엄마와 아빠들도 다르지 않다.


​나를 위한 홍합탕 한 그릇은 번거롭고 귀찮지만,

가족을 위한 요리에는 기꺼이 몸을 갈아 넣는다.

자신을 위한 한 끼는 늘 그렇게 뒤로 밀린다.


​나 또한 그랬다.

​늘 ‘김기사’의 도시락과 저녁상을 먼저 차렸고,

주말에 올 딸아이의 입맛을 떠올리며 장을 봤다.

타인을 향한 마음은 늘 헤펐지만,

나를 향한 마음은 지독히도 인색했다.


​오늘은 큰 맘을 먹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생각나던

샘 킴 셰프의 굴홍합 파스타를 오롯이 나를 위해 만든다.


화덕 피자를 흉내 낸 간단한 피자도 하나 굽는다.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한 배려가 아니라

오직 나의 미각만을 위한 식탁.

주방에는 오랜만에 설명하지 않아도 좋은 냄새가 차오른다.


​인생을 꼭 껴안아 보고 싶었다.
(나를 위한 요리로.)
​사람들을 깊고 진하게 사랑했다.
(정성껏 차린 밥상으로.)

​— 한강, 『빛과 실』 문장 형식 변주

​충분히 살아낸다는 건

그 사랑의 화살표가 가끔은

나를 향해 돌아오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를 위해 운동을 하고,

수전을 돌려 쏟아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는 일.

그 따뜻한 샤워가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알기에

나는 매일의 감각에 집중한다.


​오늘의 파스타는 나에게 주는 작은 훈장이다.

늦은 밤까지 타인의 배를 불리느라

정작 제 허기는 잊고 사는

이 세상 모든 부엌의 주인들에게 이 식탁을 바치고 싶다.


​나를 위해 만 원짜리 식재료를 아끼지 않는 일.

낮아진 행복의 역치는

나 자신을 정성껏 대접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오늘은 남겨진 재료가 아니라,

가장 귀한 재료가 내 접시 위에 있다.

​나는 오늘,

나를 가장 깊게 사랑하기로 했다.


(근데 사실 난 늘 배부르게 잘 먹는다.

그리고 오늘의 화덕 피자는 김기사가 싫어하겠다.

건강한 맛이라서 ㅎㅎㅎ

당장 피자○○에 배달시키라고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