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향한 밥상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매일 오후 5시.
나의 최대 고민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오늘 도시락 반찬… 뭐 하지?”
누군가에겐 가벼운 메뉴 결정이겠지만, 나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치열한 고백이자 정성을 다한 과제다.
30년 가까이 함께해 온 ‘김기사’의 취향과 입맛, 건강을 온전히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김기사는 까다롭다.
물에 빠진 육고기를 싫어하고, 가공식품도 즐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물을 썩 잘 먹는 편도 아니다. 게다가 도시락은 일반 집밥과는 다르다.
시간이 지나도 식감이 죽지 않아야 하고, 뚜껑을 열었을 때 기분이 좋아야 한다. 아무거나 담을 수가 없다.
고민의 끝은 언제나 제철 식재료에 답이 있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면 계절이 말을 걸어온다.
마트 한쪽에서 매생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김기사가 유독 좋아하는 굴도 한 봉지 집어 들었다.
오늘의 도시락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매생이굴전: 겨울의 바다를 노릇하게 구워냈다.
데친 브로콜리와 표고버섯볶음: 식탁의 초록빛과 숲의 향을 더했다.
참치김치찌개: 자칫 심심할 수 있는 구성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혈당 맞춤 밥: 백미는 덜어내고 렌틸콩, 병아리콩, 귀리를 잔뜩 섞었다. 건강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타인을 향한 밥상은 언제나 관심과 정성에 그 기원을 둔다.
그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기억하는 일,
무엇을 먹을 때 가장 환하게 웃는지 살피는 일.
그 수고로운 관찰이 곧 사랑임을 안다.
오늘도 나는 오후 5시의 고민을 기꺼이 껴안는다.
나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누군가의 한 끼는 더 단단해질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