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자 밖으로 쏟아진 ‘헤픈 마음’

입춘을 열흘 앞둔 어느 겨울왕국에서의 종종걸음

by 랑이네 글밥집

입춘까지 이제 열흘 하고도 하루가 남았다.

봄이 지척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동장군 기세가 대단한 데다 간밤에 내린 눈은 세상을 온통 겨울왕국으로 만들어버렸다.

아침에 마주한 한파의 기세는 여전히 매섭기만 하다.


운동을 마치고 도서관을 다녀오는 길, 그 눈부시게 하얀 세상 속에서 묵묵히 제설 작업을 하고 계신 경비원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 얼음을 깨고 눈을 치우는 손길이 유난히 시려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괜히 내 마음이 먼저 바빠졌다.



대추생강차의 화산 폭발


집에 들어서자마자 겉옷도 벗는 둥 마는 둥 주방으로 향했다.

대추생강차를 끓이고 호빵을 찜기에 올렸다.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는 계피도 넉넉히 넣었다.

온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 몸에 좋다는 것은 죄다 때려 넣고 싶었다.

그 마음이 헤프다 못해 넘쳤다.


잠시 빨래를 개고 돌아온 주방.

주전자가 화산 폭발하듯 대추생강차를 뿜어내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로 붉은 찻물이 펄펄 넘쳐흐른다.


“울랄라.”


은수 작가님의 ‘헤픈 마음’을 나도 한번 따라 해 보려다가 사고를 친 셈이다.

헤픈 마음에 물을 너무 많이 부은 탓이었다.

주전자 밖으로 넘친 건 찻물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빨리 온기를 전하고 싶어 안달 난

나의 조급 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흘러도 괜찮은 날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쏟아진 찻물을 대충 닦아내고,

보온병에 남은 차를 꾹꾹 눌러 담았다.

핫팩을 챙기고 호빵 식을 새라 경비실로 종종걸음을 쳤다.


어이쿠, 뭘 이런 걸 다…



호빵과 보온병을 건네자 경비원분이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하신다.


아니요, 제가 고맙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 애써주셔서요.”



딩동, 다시 돌아온 온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집 안의 정적을 깨고 ‘딩동’ 벨이 울린다.

문을 여니 아까 그 경비원 아저씨가 서 계신다.

빈 그릇과 보온병을 직접 챙겨 들고 올라오신 것이다.



아이고, 아저씨. 제가 나중에 간다니까요.

아니에요. 덕분에 너무 잘 먹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저씨 손에 들린 빈 그릇이, 방금 끓여낸 찻잔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주전자를 넘치게 했던 그 ‘헤픈 마음’을 다시 떠올려 본다.

나의 다정함은 가끔 주전자 밖으로 쏟아지고,

주변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코끝이 찡한 겨울왕국 같은 날에는, 조금 넘치고 흘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식힌 마음보다,

펄펄 끓어 넘쳐 주변까지 뜨끈하게 적시는

그 헤픈 마음이

결국 이렇게, 내 문 앞까지 다시 돌아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