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퇴근길 빵 봉투와 갓김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차리는 식탁

by 랑이네 글밥집
퇴근해 집에 돌아온 아버지의 손에는
종종 고려당의 도너츠나 고로케가 들려 있었다.
열 개들이 사각 상자는 그 상자의 모양만 해도 세련되어 보였다."

— 호원숙, 『엄마 박완서의 부엌』 중

호원숙 작가의 이 문장에 마음이 툭 걸려 멈췄습니다.

1960년대 명동의 세련된 종이 상자 대신,

제 기억 속에는 말죽거리 사거리의 풍경이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퇴근길 아버지의 손에는 종종 KFC 치킨이나 묵직한 빵 봉투가 들려 있었습니다.

빵을 유독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팥빵, 소보루빵, 초코소라빵부터 커다란 맘모스빵까지 종류별로 한가득 사 오시곤 했습니다.

노란 전등 아래 봉투를 펼치면 다섯 식구의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 '골라 먹는 재미'는 어린 시절 우리가 누린 가장 달콤한 사치였습니다.



사랑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전에 철학자 강신주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부모님이 살아생전 무슨 음식을 좋아하셨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에,

제사상마다 모두가 똑같은 음식을 올리는 것이라 일갈하더군요.

부모님이 어떤 맛에 즐거워하셨는지 살피는 것이 곧 사랑이라는 말.

당시 건강하셨던 부모님을 둔 제게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지만, 그 화두만은 가슴에 남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시고 3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을 때,

저는 아버지의 유일한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지상에서 보내는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든 행복으로 채워드리고 싶어 고군분투했습니다.


아버지는 짜장면과 삼겹살, 젓갈 종류와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알싸한 갓김치도 즐기셨지요.

병세가 깊어져 음식을 넘기기 힘들어지신 뒤로 양갱과 두유로 겨우 끼니를 잇게 되기 전까지,

저는 아버지가 드시고 싶다는 것들을 부지런히 해드리고 사다 날랐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노동'이었으니까요.


아버지가 남긴 유언, 나의 논문이 되다


투병 중인 아버지와 마주 앉아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한 남자의 인생을 기록하는 '생애사 면담'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들려주신 삶의 굴곡과 기억들은 그대로 제 논문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그 문장들을 하나하나 활자로 옮기며,

저는 그간 몰랐던 수많은 아버지를 다시 만났습니다.


막둥이 아들로 태어나 사랑받던 아기였던 아버지,

초등학생이 되어 할머니가 논밭에서 일하시는 동안 부엌일을 도맡아 돕던 기특한 소년 아버지,

중학생이 되어 친할아버지와 논일을 거들던 듬직한 아들을 지나,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아픈 시절의 청년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이어 농협 입사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해 당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청년 아버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엄마와 결혼해 큰딸인 나를 얻고 세상 부러울 게 없다며 웃던 스물다섯의 가장 아버지.

그리고 마침내 세 자녀를 키우며 서투른 사랑으로 상처 주었던 일들을 후회하며 눈물 흘리시는 노년의 아버지까지.


활자 사이사이에서 아버지는 비로소 한 인간으로 온전히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 지독한 투병의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는 당신의 삶을 복기하며 저와 함께 이 논문을 써 내려가신 셈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 귀한 종이 뭉치가 세상에 나왔을 때, 저는 그것을 아버지 손에 직접 쥐여드리지 못했습니다. 나온 지가 언제인데, 당신의 생애를 기록한 이 책을 정작 주인공인 아버지께 보여드리지 못한 것이 못내 한스러워 가슴이 아릿합니다.


사촌오빠들이 보내온 사진에 ai 로 논문을 합성했습니다. 다음 번에 직접 가지고 가야지요.



생신이자 기일, 다시 차리는 아버지의 밥상


오늘은 아버지의 기일이자 생신입니다.

때마침 지난 주말 사촌 오빠들이 고향 성묘를 다녀오며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직접 찾아뵙지 못한 마음은 아버지 김 도미니코를 위해 미사를 넣는 것으로 대신하며,

주방에서 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시던 갓김치를 담급니다.

그리고 올해는 생신 케이크 대신 특별한 빵을 준비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커다란 냄비에 구워주던 그 폭신한 카스텔라를 추억하며,

서툰 솜씨지만 정성을 다해 직접 구워보았습니다.

오븐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한 향기가 마치 그 시절 말죽거리의 노란 전등 아래로 저를 데려다 놓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사 오시던 빵 봉투는 고단함을 뚫고 가족에게 닿고 싶었던 '귀가 본능'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담그는 갓김치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께 닿고 싶은 저의 '사랑 본능'입니다.


비록 아버지는 곁에 없지만,

책상 위 논문 속에는 아버지의 생애가 살아 숨 쉬고

제 손끝에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맛이 남아 있습니다.


보고 싶은 아버지께, 갓김치 익어가는 냄새와 함께 이 그리움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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