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스스로 대답을 가져다줄 때까지

신을 빚는 하루

by 랑이네 글밥집

당신은 정말로 젊습니다.
부디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대해 인내를 가지세요.
성급하게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마세요.
지금은 그 의문 속에서 살아보세요.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 먼 미래에 당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어느 순간,
당신의 삶은 당신을 대답으로 이끌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삼십 대, 터널 속에서 마주한 문장


삼십 대 초반, 이 책을 붙들고 살던 날들이 있었다.
결혼 10년이 채 안 되었을 때, 내 나이는 서른 중반,

삶은 늘 ‘가난’이라는 단어에 짓눌려 있었다.


결혼 전부터 이어진 친정의 빚,
친정 식구들 살라고 사준 아파트 대출금,
그리고 친정 어머니의 생활비까지.


매달 돌아오는 숫자의 압박에 허덕이며 살았다.
남편과는 어느새 대화가 먹통이 되어갔고,
아이는 어렸으며,
나 또한 어른이 되기엔 너무 서툴렀다.


생활고는 내가 품었던 작고 소중한 꿈들 위로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가난했고, 비루했고, 슬펐기에 나는 자주 화가 났다.


그 시절, 릴케의 문장은 양날의 검 같았다.
어떤 날에는 눈물겨운 위로가 되었지만,
어떤 날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힌
내 삶에 조금도 닿지 않는 사치스러운 말처럼 느껴졌다.
‘대답을 살아내라’니.
당장 내일의 이자가 급한 사람에게
그 말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싶어
책을 덮기도 했다.





오십 대, 삶이 건네는 대답


세월이 흘러, 오십이 되어 다시 이 책을 읽는다.
그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지독했던 친정 빚은 다 갚았고,
아버지가 사시던 아파트도 사후에 처분했다.
매달 생활비를 챙겨드리던 어머니는
이제 요양원에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신다.


무엇보다 기적 같은 건,
그 비루했던 시절 속에서도
나는 결국 원하던 공부를 끝내 해냈다는 사실이다.


품 안의 아기는 어느덧 성인이 되었고,
그토록 외롭고 적막하던 결혼 생활도
이제는 그럭저럭 합을 맞춰 살아간다.


돌이켜보면 참 많이도 미워했다.
가난한 나를,
짐이 되는 가족을,
그리고 이 모든 고난을 허락한 내 운명을.


그런데 이제야 알 것 같다.
릴케의 말이 결국 옳았다는 것을.
해답은 머리로 찾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삶이라는 길을 묵묵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이 나를 그 대답 앞에 데려다 놓는다.

해답을 억지로 쥐려 했던 손등의 힘을 빼자
미움은 소리 없이 사그라들었다.






오늘, 신을 빚는 시간


벌들이 꿀을 모으듯
우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것만을 모아서
신을 만들어갑니다.
일과 후에 오는 마음의 평온,
침묵이나 작은 고독의 기쁨,
우리가 혼자 하는 모든 일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서는 보지 못할
그 신을 이렇게 만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이제 나는 안다.
매일의 일과 생각이
신을 빚어가는 숭고한 과정이라는 것을.


삼십 대의 내가 고통스럽게 던졌던 질문들에 대해
오십 대의 나의 일상이
비로소 대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눈을 떠 나지막한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이부자리를 정돈하며 마음을 차분히 한다.

나를 쓸모 있게 연소할 수 있는 일터로 향한다.


낮에는 일을 하고
식탁에 앉아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 소박한 밥상을 차리고,
좋은 시와 문장 속에 푹 빠져 글을 쓴다.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드는 이 모든 시간은
흩어지는 모래알이 아니다.


벌들이 꿀을 모으듯,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상의 순간들을 모아
내면의 거룩한 존재를 빚어내는 재료다.


이제는 안다.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의문 속에서 성실히 살다 보면
삶은 반드시 우리를 대답으로 이끈다.


오늘 하루를 정성껏 살아낸 그 시간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해답이며,
우리가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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