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끓인 외톨이 떡국

외톨이 떡국이 알려준 나를 챙기는 법

by 랑이네 글밥집

최근 화제가 된 〈흑백요리사 2〉 최강전에서 최강록 셰프가 내놓은 접시는 뜻밖이었다.


화려한 기술이나 고가의 식재료 대신,

그는 요리를 하고 남은 재료들을 모아
‘나만을 위한 음식’을 만들었다.
그 장면이 며칠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류 요리사들은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음식을 하지 않는다는 고백.
남을 위해 정교한 맛을 설계하고 돌아와,
정작 본인은 남은 식재료나 라면으로 허기를 달랜다는 그 역설은
비단 셰프들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타인을 위해 국자를 드는
세상 모든 ‘부엌의 주인’들이
어쩌면 공통으로 앓고 있는
고질적인 인색함일지도 모른다.



우리 집의 외톨이 메뉴



며칠 전 ‘김기사’의 도시락엔 매생이굴전을 부쳐 넣었고,
어제 저녁 식탁엔 굴매생이국을 올렸다.
제철을 만난 매생이와 굴은 더없이 싱싱했다.
식구들이 맛있게 비워낸 냄비 바닥에
재료가 조금 남았다.


우리 집에서 떡국은 ‘외톨이’ 같은 존재다.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남편도 딸도 떡국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식구들이 찾지 않는 메뉴는
자연히 가스레인지 위에서 밀려난다.
나 하나 먹자고 국물을 내고 떡을 불리는 일은
왠지 유난스럽게 느껴져
나는 오랫동안 떡국을 끓이지 않았다.
남겨진 재료는 늘
누군가의 다음 끼니를 위한 조연으로
쓰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남겨진 매생이와 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오직 나를 위해 냄비를 올렸다.


나를 대접하는 ‘존중’의 한 그릇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초록빛 매생이가 부드럽게 풀리고
통통한 굴이 제 향을 발산할 때,
주방에는 오직 나만을 위한
정직한 냄새가 가득 찼다.


국물이 한 숟갈 넘어가자
단전까지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




크으, 시원하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뱉는 이 한마디는
엄지손가락 네 개를 연달아 붙여도
모자랄 만큼 완벽한 맛이었다.


문득 호원숙 작가의 글귀가 스쳤다.



퇴근해 집에 돌아온 아버지의 손에는
종종 고려당의 도너츠나 고로케가 들려 있었다.

— 호원숙, 『엄마 박완서의 부엌』 중



호원숙 작가의 아버지가
빵 봉투를 들고 귀가했듯,
우리도 늘 누군가를 기쁘게 할 봉투를 준비하며 산다.


남편의 건강을 위해
백미를 줄인 잡곡밥을 짓고,
딸아이의 입맛을 위해
치즈 포카치아를 굽는다.


하지만 정작
그 빵 봉투를
나 자신에게 건네는 일에는
왜 그리도 서툴렀을까.


타인을 향한 밥상이 정성이라면,
나를 향한 밥상은 ‘존중’이다.


충분히 살아내기 위해서는
그 사랑의 화살표가
가끔은 나를 향해 꺾여야 한다는 것을,
오늘 떡국 한 그릇을 비우며 배운다.


비록 남은 재료로 만든 소박한 끼니였지만,
그건 세상 어느 화려한 코스 요리보다
완벽하게 나에게 맞는 한 끼였다.


가끔은 이렇게라도
나를 챙겨야 한다.
내 접시 위의 마지막 주인이
나여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