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오 년 전 시어머님이 사주신 화이트 장롱

가난했어도 사랑했기에

by 랑이네 글밥집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신호를 기다리던 운전석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유애선의 《흙냄새 나는 이야기》 중 한 대목이었다.

전쟁통에 한 살이었던 저자를 업어 키운 건 열 살 많은 언니였다.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아누웠고, 아이가 아이를 키웠다. 세월이 흘러 언니가 시집을 갈 때, 평생 누워만 있던 어머니가 몸을 일으켜 혼수를 장만하며 한탄한다.

“나 같은 어미가 어디 있냐. 애 학교도 제때 못 보내고 맨날 누워만 있었는데... 이거 하나 더 챙긴다고 그 죄가 없어지겠냐.”

그 문장이 비수처럼 날아와 내 25년 전 기억의 한복판에 꽂혔다.


스물다섯, 무너진 담장 아래의 결혼

나의 스물다섯은 시린 계절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졌고,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사채업자의 손에 넘어갔다. 가족들은 월세를 전전하다 결국 산동네 작은 집으로 스며들었다.

그 벼랑 끝 같은 시기에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100만 원 조금 넘던 월급은 대부분 집안의 빚을 갚는 데 쓰였고, 내 손에 남은 건 쥐꼬리만 한 자존심뿐이었다.

집안 형편은 바닥이었지만, 그래도 혼수만큼은 내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시어머니는 이미 우리 집의 큰 빚을 대신 갚아주기로 하신 상황이었다. 며느리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셨을 그 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텅 빈 손이 부끄러워 발을 동동 굴렀다.


침대와 화이트 장롱

새 침대를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집이 망했어도 남아 있던 가구 가운데, 쓸만했던 침대를 들고 시집을 가기로 했다. 손때 묻은 책상도 함께였다.

차마 장롱까지 가져가겠다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나를 측은하게 보시던 시어머니는 한샘 화이트 장롱을 사서 신혼집에 넣어주셨다.

라디오 속 어머니가 혼수를 챙기며 울먹이던 그 장면 위로, 신혼집에 서 있던 그 장롱이 겹쳐졌다.

해줄 수 있는 것이 너무 적어서, 딸의 뒷모습을 보며 숨죽여 울었을 우리 부모님의 마음이 이제야 만져졌다.

아버지는 그때 내게 물으셨다.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해주는데, 너 그래도 정말 괜찮겠느냐.”

그건 질문이 아니라 아비의 통곡이었음을, 나는 신호대기 중인 차 안에서야 깨달았다.


가난보다 깊었던 사랑


신호가 바뀌었다. 번진 눈물을 훔치고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았다.

25년 전, 그 좁고 가파른 산동네 길을 따라 내려오던 나의 침대와 시어머니가 사주신 새 장롱. 그것들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었다. 미안함에 고개를 숙였던 부모님의 사랑이었고, 그런 며느리를 말없이 안아준 시어머니의 배려였다.

돌아보니 참 시린 세월이었으나, 마음만은 춥지 않았다. 가난은 끈질기게 우리 곁에 남아 있었지만, 사랑은 단 한순간도 줄어들지 않았던 그 시절.

내 방 안의 장롱은 여전히 그날의 우리를 기억하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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