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동문 모임을 2년째 나가지 않는 이유
대학원 동문 모임을 나가지 않은 지 벌써 2년째다.
한때는 그 안에서 인정받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중요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세계와 작별 중이다.
오십을 앞두고 내린 선언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치매를 앓으시는 어머니를 간병하며 내 영혼은 너덜너덜해졌다.
오십이라는 숫자를 목전에 두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이제 하기 싫은 건 안 한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혹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나를 소모하는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모임 때마다 “왜 안 오냐”는 연락이 왔지만, 그냥 침묵했다.
숨만 쉬어도 말이 도는 곳임을 알기에 굳이 구구절절한 이유를 보태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웅성거리는 그들만의 리그
어제는 예전 회장과 총무로 함께 일했던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예의상 받은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풍경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저출산 여파로 우리 분야는 직격탄을 맞았고, 대학원은 신입생이 거의 없는 역피라미드가 되었다고 했다.
은퇴 이후의 삶이 모임의 단골 화제가 되었단다.
골프 이야기, 손주 육아, 무릎 통증, 그리고 은퇴 후 재취업을 하려 해도 ‘오버스펙’이라 기피된다는 씁쓸한 한숨들.
자격증을 따서 해외로 가겠다는 막연한 다짐까지.
그 대화의 기저에는 늘 비슷한 공기가 흐른다.
여유로운 이를 은근히 부러워하고, 그 부러움 끝에 자신의 현재를 슬쩍 초라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특유의 분위기.
비교를 멈추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나는 이제 그 세계와 결별했다.
모임에 가지 않으니 남과 나를 저울질하는 피곤한 비교가 줄었고, 타인의 성취에 마음이 출렁거릴 일도 없어졌다.
전화를 끊으며 선배가 말했다.
“안 휘둘리고 네 길 가는 거, 참 훌륭하다.”
하지만 이건 훌륭해서 내린 결정이 아니다.
그저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살기 위해 고른 생존 전략이었을 뿐이다.
자유는 침묵 속에 있었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내 자리에서 내 속도로 하루를 보낸다.
화려한 인맥도, 떠들썩한 안부 확인도 없지만 생각보다 훨씬 자유롭다.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삶.
타인의 잣대로 나를 재단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평온함은 혼자가 된 뒤에야 비로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