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버님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나의 아버지
삼십 년 지기 베프의 아버님이 1년간의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우리 아버지와도 각별하셨던 친구분이 빈소 한쪽에 넋이 나간 얼굴로 앉아 계셨다.
그분이 울먹이며 나직이 뱉은 한마디가 가슴에 툭 걸렸다.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니까,
오래 사는 게 좋은 게 아니야….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돌아오는 길, 운전대를 잡은 손 위로 자꾸만 그 음성이 겹쳐졌다. 언젠가 내 친구들도 하나둘 떠나가겠지.
혹은 내가 먼저 떠나 남겨진 이들이 저런 표정을 짓게 될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독 길고 적막했다.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 “랑이 왔구나”
장례식장에는 삼사십 년 넘게 알고 지낸 어른들이 많았다. 나를 아주 어릴 적부터 보아온 분들이다.
“랑이 왔구나.”
그 한마디에 마법처럼 시간이 되감겼다.
오십 줄에 들어선 중년의 여성이 아니라,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
그 다정한 부름 앞에 나는 괜히 말이 많아졌고, 평소보다 더 아이처럼 웃음이 많아졌다.
어른들 틈에서 나는 여전히 보호받고 사랑받던 그 시절의 아이였다.
장례미사 내내 친구 어머님은 가냘픈 몸으로 겨우 서 계셨다. 쏟아지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려 해도 자꾸만 위아래로 들썩이는 어머님의 가녀린 어깨가 더욱 슬퍼 보여서, 나는 자꾸만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 마른 어깨에 실린 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나이가 들어도 우리는 여전히
일정을 마치고 집에 가겠다 인사를 건네자, 어머님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셨다.
애기가 밥도 안 먹고 가면 어쩌냐.
애기야, 밥 먹고 가.
‘애기’.
그 단어가 주는 뭉클함에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오십이 되어도, 자식을 키우고 세상을 다 아는 척하며 살아도, 어머니들의 눈에는 우리가 여전히 챙겨 먹여야 할 ‘애기’인 모양이다.
그 따뜻한 배려 속에 담긴 온기가 슬픔으로 차갑게 식어 있던 마음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다시, 나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어제와 오늘 내내 6년 전 이맘때가 떠올랐다. 내 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그 겨울의 끝자락.
빈소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친구들처럼, 나도 우리 아버지가 참 많이 그리웠다.
내 이름을 불러주던 목소리, 내가 오면 밥은 먹었느냐고 묻던 그 눈빛.
친구의 슬픔을 나누러 갔다가, 나는 도리어 내가 잃어버린 가장 큰 세계를 다시 마주하고 왔다.
장례식장을 나오며 하늘을 보았다. 아버지가 그곳에서 친구를 마중 나오셨을까.
“애기야, 잘 가라.”
어디선가 바람결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