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운동은 ‘사랑’이 아니라 ‘책임’이다
오늘 운동을 하다 화면 속 한 부녀의 이야기를 보았다.
50대까지 앞만 보고 달리다 과로로 큰 사고를 당할 뻔한 뒤 운동을 시작했다는 아버지.
이제는 딸과 함께 크로스핏 대회까지 나간다고 했다.
그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나에게 운동은 책임입니다.
자신을 돌보는 일이 결국 가족을 위하는 길이며, 자녀에게 걱정과 부담을 넘기지 않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는 말.
그 문장을 곱씹는 순간,
나의 기억은 32년 전 차가운 주방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32년 전, 세 개의 도시락과 다림질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참고서 냄새보다 빨래 비누 향과 밥 짓는 김 서린 냄새로 더 선명하다.
당시 마흔 초반이던 어머니는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져 오랜 기간 병원에 입원 중이셨다.
갓 고등학생이 된 나는 매일 아침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내 것과 동생들 것까지 세 개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아버지의 와이셔츠와 우리 교복을 매일 빨고 다렸다.
아침저녁으로 쌀을 씻고 밥상을 차리는 일도 오롯이 내 몫이었다.
살림의 고단함보다 더 나를 짓눌렀던 건
‘엄마가 이대로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공포였다.
공부와 가사 노동,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이별에 대한 불안.
나의 열일곱은
그렇게 깊은 그늘 아래 서 있었다.
대물림 하고 싶지 않은 그늘
어머니는 칠십 초반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내 안의 경각심은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그리고 더 절실하게 깨어났다.
나는 건강과 운동에 집착하듯 신경을 쓴다.
식단을 조절하고, 몸이 무거운 날에도 헬스장이나 공원으로 향한다.
누군가는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못해 운동 중독 아니냐고 하지만,
내 운동의 동력은 미안함과 사랑이다.
32년 전 내가 겪었던 막막함을
하나뿐인 딸에게는 절대 대물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엄마의 병을 걱정하며 꿈을 접거나,
병실 복도에서 혼자 눈물짓는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오늘도 나는 ‘책임’을 다한다
그래서 나에게 운동은 취미가 아니라 책임이다.
내가 건강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임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벤치 프레스를 들어 올린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근육이 비명을 지르지만 멈추지 않는다.
이 땀방울이
훗날 내 아이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가치 있는 투자가 어디 있을까.
부모가 줄 수 있는 것은 재산만이 아니다.
아이의 삶이 온전히 자유롭도록,
아프지 않고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것.
오늘도 나는 러닝머신과 체스트 프레스 머신 사이에서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