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뒤통수를 보며 울어본 적 있나요

너를 돌보며 비로소 안아준 나의 어린 시절

by 랑이네 글밥집

졸업 시즌이다.
정들었던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
학교로 갈 준비를 마쳤는데,
정작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건
나인 것만 같다.



마음을 배운 시간

“선생님이랑 같이 있으니까 좋아요.”

채우가 무심코 툭 던진 이 한마디에
심장이 순간 멈추는 줄 알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채우는
‘선생님’이라는 글자를 쓰지 못했다.


대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랑이 사랑해”라고 삐뚤빼뚤 적어 내밀곤 했다.


그런데 졸업식 날,
채우가 건넨 편지에는
또박또박 정성이 담긴 글자가 적혀 있었다.


[랑이 선생님 사랑해요]

아이는 지난 일 년 동안
글자를 배운 것이 아니라
글자 속에 담을 마음을 배운 모양이다.

채우야,
선생님은 네가 있어서 정말 행복했단다.



가 말한 모든 색깔을 담아


​어제는 민서(가명)가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무슨 색 좋아해요?”
“노란색.”


​잠시 후 민서가 또 묻는다.
“선생님, 무슨 색 좋아해요?”
“음, 민트색.”


​민서는 틈만 나면 달려와 내가 좋아하는 색을 물었고, 나는 그때마다 파란색, 빨간색, 내가 아는 온갖 색깔을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한참 뒤, 민서가 그림과 편지를 들고 왔다.

그 안에는 내가 말한 모든 색깔이 무지개처럼 담겨 있었다.

내 취향을 하나하나 수집해서 종이 위에 펼쳐놓은 아이의 정성. 민서는 선물을 건네며 작게 속삭였다.


“선생님, 눈물 날 것 같아요.”


내일이면 졸업이라 이제 못 만난다는 사실이 실감 났는지, 민서는 편지를 건네주자마자 홱 등을 돌려 내 품에 안겼다. 나는 이미 민서의 뒤통수를 보며 울고 있었다.



너를 아끼며 나를 키우는 ‘재양육’의 시간

매일 아침 헝클어진 머리를 빗겨주고,
구겨진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면
배시시 웃던 민서.

이제 그 아이가 학교에 간다.

민서를 아껴주고 격려하며 보낸 시간 동안
사실은 나도 돌봄을 받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교사나 부모는 아이를 돌보며
비로소 ‘재양육’ 되는 경험을 한다고들 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과정에서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
사랑이 고팠던 어린 내면 아이가
불쑥불쑥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행동이 조금 느리다는 이유로
유치원 시절 내내 구박받고
주눅 들어 있던 나의 어린 날들.

민서의 머리를 빗겨주며
나는 사실 그 시절의 작고 여린 나를
다시 만나고 있었다.

민서를 안아주고 사랑해 주는 행위는
방치되었던 내면 아이를
정성껏 돌보는 일이었다.

너를 돌보며 나 또한 돌봄 받고,
너를 키우며 나 또한 성장했다.



느리지만 단단한 너만의 속도

이번 졸업생 중에는
유독 나를 닮아 학습이 느렸던
효민이(가명)가 있다.

친구들이 받아쓰기와 알림장을
후다닥 끝내고 놀이 영역으로 달려 나갈 때,
효민이는 그 뒷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느릿느릿, 그러나 끝까지
자기 속도대로 연필을 눌러쓰며
제 몫을 해내던 아이.

졸업식이 끝난 뒤
효민이가 해맑게 웃으며
내 손에 카드를 쥐어주었다.


사랑하고, 보고 싶을 거라는 고백이 담긴 편지.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며
왈칵 미안함이 밀려왔다.

‘조금 더 기다려줄걸.
내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조바심을 아이에게 투영하진 않았을까.’

효민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너는 네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고 멋진 아이란다.


고마웠어, 나의 작은 스승들

민서가 그려준 무지개색 그림,
효민이가 건넨 진심 어린 카드.

내일이면
이 아이들을 더는 매일 만날 수 없다.

민서야, 효민아, 채우야.

선생님은 너희를 격려하고 아껴주면서
사실 나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배웠어.

너희가 자라난 만큼
선생님의 마음 한 구석도
함께 단단해진 것 같아.

이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너희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무엇보다 효민아,
너만의 속도로 너답게 자라주렴.

선생님은
아침마다 너희를 마주하던
그 고요한 평화를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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