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왜 그토록 짜장면과 미사에 집착하셨을까

무뚝뚝한 가장이 매주 일요일에 부리던 고집의 정체

by 랑이네 글밥집

출근길, 차 안을 가득 채운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DJ가 봉부아 작가의 책 『사랑이 왜 그래』의 한 대목을 읽어주고 있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월급날,

가족들이 모두 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사 식당에 가서 돈가스를 먹던 추억을 아름답게 펼쳐냈다.


그 다정한 문장들을 듣고 있자니,

내 마음도 순식간에 타임슬립을 탄 듯

사십여 년 전의 일요일로 날아갔다.



졸린 눈을 비비며 따라나선 ‘강제적 리추얼’


나의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은 늘 전쟁이었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부터 우리 삼 남매를 깨워

기어코 씻게 만드셨다.


당시엔 차도 없던 시절이라,

버스를 타고 30분은 족히 가야 하는

양재동 성당까지 우리를 이끌고 가셨다.


어린 마음엔 일요일 아침 단잠을 포기하고

졸면서 미사를 드리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투덜대고 싶었지만,

워낙 무뚝뚝하고 엄격한 아버지였기에

우리 삼 남매는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깨우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성당 미사가 끝나면 늘 정해진 코스가 있었다.


성당 건너편,

아버지 회사 근처에 있던 단골 짜장면집.


아버지는 그곳에서 우리에게

짜장면과 짬뽕, 때로는 따끈한 우동과 군만두를 사주셨다.


배불리 먹고 소화가 될 즈음이면

다 같이 목욕탕에 가는 것으로

일요일의 일과는 끝이 났다.


그것은 수년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아버지 나름의 ‘가족 리추얼’이었다.



화목하지 않아도 지켜냈던 식탁의 풍경


사실 우리 집은

드라마처럼 화목한 가정이 아니었다.


엄마와 아버지의 사이가 유독 좋았던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다정다감하게 말을 건네는 분도 아니었다.


말씀도 없고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왜 그토록 일요일마다 이 고된 루틴을 강행하셨는지,

그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피곤해 죽겠는데 왜 꼭 성당에 가야 해?”

“집에서 편히 쉬면 안 되나?”


속으로는 수없이 투덜댔지만,

아버지는 자식들의 불만 섞인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셨다.


마치 그 일을 해내지 않으면

가장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 시절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든 지금에야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는 그때의 아버지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그 무뚝뚝한 뒷모습에 담긴 진심을 읽어낸다.


말주변이 없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남자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표현은

‘함께하는 시간’을 물리적으로 확보하는 것이었으리라.


피곤을 무릅쓰고 삼 남매를 씻겨 성당에 데려가고,

비싼 외식은 아니어도

짜장면 한 그릇을 온 가족이 모여 먹게 하는 것.


그것은 화목하지 못한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려는

아버지 나름의 부단한 애씀이자 노력이었다.



오늘도 나는, 나의 리추얼을 이어간다


아버지가 지켜냈던 그 일요일의 무게를

나는 오늘 남편 김기사의 도시락을 싸며 다시 느낀다.


평소 과일을 즐기지 않는 김기사가

어제 마트에서 딸기를 사 왔다.

붉게 익은 딸기 한 팩을

무심하게 건네는 그 손길에서

나는 아버지의 짜장면과 같은

투박한 다정함을 본다.


그래서 오늘 도시락에는

그 딸기를 정성스레 담았다.

마음이 가라앉는 날에도

혼자 있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날에도

나는 해야 할 일을 한다.


밥을 담고, 반찬을 채우고,

그 위에 딸기 몇 알을 올린다.


별것 아닌 이 반복이

생각보다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는 걸

나는 안다.



행복은 화려한 모양이 아니어도 좋다


라디오에서 들려온 돈가스의 추억처럼

나의 짜장면, 그리고 도시락도

언젠가는 내 삶의 가장 따뜻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행복은

대단한 모양이 아닐지도 모른다.


귀찮음과 무력감을 지나

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같은 마음을 쌓아가는 일.


그 안에

사랑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가만히 말을 건넨다.


그때 먹었던 짜장면이 참 맛있었다고.


그 고집 덕분에

내 마음속에 가족의 무늬가 남았다고.

이제야 조금 알겠다고.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그 일요일을 지켜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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