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외로움은 어떻게 빛이 되는가

​"사실은 나도 심심해", 귓속말이 건네온 위로

by 랑이네 글밥집

사립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나의 배경음악은 늘 집안 가득 울려 퍼지던 영어 테이프 소리였다.


교육열이 높았던 엄마는 나를 쉼 없이 밀어붙였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참 느린 아이였다.

모든 것이 한 박자씩 늦었고, 유치원의 빠릿빠릿한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늘 주변을 맴도는 이방인이었다.


그 시절의 사진을 들춰보면, 아이들 속에서도 어딘가 끼지 못한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가 있다.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아이, 집에 가면 "첫째가 왜 이렇게 느리냐"며 꾸중을 듣던 아이.


나는 그때, 참 많이 외로운 아이였다.



결핍은 때로 다정한 시선이 된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교사가 된 지금도 나의 시선은 늘 무리에서 한 발짝 떨어져 겉도는 아이들에게 먼저 머문다.

남들보다 행동이 조금 느리거나, 친구들 틈에 섞이지 못하고 장난감만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예전의 내 모습이 겹쳐 보여 마음이 쓰인다.


오늘도 유독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한 아이를 불러 옆에 앉혔다. 함께 그림책을 읽어주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혼자 남겨진 장면에서 멈춰 섰다.


이 아이 마음이 어때 보여?


내 조심스러운 물음에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다 내 귀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였다.


사실은... 나도 심심해.


그 짧은 고백 끝에 아이는 수줍게 내 어깨에 몸을 기댔다. 아이의 온기가 전해지는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어린 날의 외로움이 일렁였다.


내 안의 어둠이 아이들에게 빛이 되는 순간


어릴 적엔 내 느림이 잘못인 줄 알았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이 부끄러움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오늘 아이의 작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깨달았다.

그때 내가 느꼈던 그 어둡고 외로운 감정들이, 지금은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는 것을.


빠른 세상에서 속도를 맞추지 못해 숨이 찬 아이들에게


천천히 와도 괜찮아, 내가 여기 있단다

라고 말해줄 수 있는 마음. 그것은 오직 외로워 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귀한 선물이다.


내 안에 남아 있던 그 시절의 그늘이, 이제는 아이들의 마음을 비추는 작은 빛이 되어간다.


느린 아이였던 나는, 오늘도 조금 느린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다정한 약속을 나누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