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적십자 다이어리
대한적십자사는 국내 자원봉사활동의 대표주자였다. 미군정 시절인 1947년 4월 적십자부녀봉사대가 발족된 것을 효시로, 1949년 9월 청주부녀봉사대가 발족되었고 1956년 11월에는 서울지사에 적십자청년봉사회가 결성되면서 전국적으로 봉사회 조직이 확산되었다. 오늘날 10만여명의 노란조끼 적십자 봉사원들은 전국 곳곳에서 자신의 시간과 노력, 돈을 들여가며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적십자 봉사원들은 봉사활동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런 봉사자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 드리지 못하는 게 미안하지만, 이 분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대한적십자사는 포상을 수여한다. 포상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 봉사원들에게 특히 인기 있고 품격있는 상이 있다. 바로 '자랑스러운 적십자 봉사회' 상이다. 지난 2007년부터 봉사회의 활동기간, 활동인원, 활동내역을 총체적으로 검토해 우수봉사회에게 지급하는 상으로, 적십자 봉사원이라면 누구라도 받고 싶어하는 최고의 상 중의 하나이다.
나는 이 상을 받은 한 봉사회와의 동행을 가끔 떠올린다. 2010년 6월 29일에 열린 '자랑스러운 적십자봉사회'시상식은 서울 삼청동에 있는 국무총리공관에서 열렸다. (현재는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국무총리공관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이 상은 매년 각 지역별 우수 봉사회 1곳을 선정하여 국무총리 공관에서 직접 수상하고 있기 때문에 봉사자들이 느끼는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2010년 충북지역에서는 청주부녀적십자봉사회(회장 이복렬)가 밀알상 수상 봉사회로 선정됐다. 당시 사회봉사 담당이었던 나는 청주부녀적십자봉사회 봉사원 세 분과 함께 이른 새벽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길에 올랐다. 봉사원 세 분의 얼굴에는 상을 수상한다는 기쁨과 총리공관을 가 본다는 설렘이 어우러졌다. 봉사원들은 이날만은 평소 입고 다니던 노란색 봉사원 조끼를 벗고, 말쑥한 정장차림을 하였다.
청주부녀적십자봉사회는 충북뿐만 아니라 대한적십자사 봉사활동의 산 역사다. 1949년 9월 27일 충북적십자사가 창립되던 날 청주지역에서 부녀자들이 중심이 돼 결성되었고, 현재에도 16명의 봉사원이 그 바통을 이어받아 활동하고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의 누적봉사만도 총 112,000여 시간으로, 봉사원 수 기준으로 치면 일인당 7,000여 시간의 봉사활동을 한 셈이다.
한 봉사회가 이처럼 오랜 기간 꾸준히 이어져 내려온다는 건 놀랍고도 축복할 일이다. 긴 역사가 말해주듯 봉사원의 면면을 보면 다들 할머님 뻘이다. 봉사원들의 연세가 기본으로 환갑을 넘었고, 50대가 막내 축에 들어가는 그런 봉사회이다. 현재 활동하고 계신 분들도 초창기 활동하신 분들에 비하면 아주 정정하고 팔팔한(?) 나이다.
청주부녀적십자봉사회는 오랜 세월 아름다운 봉사를 참 많이 해 왔다. 재난이 터질 때마다 이재민을 위해 급식을 해 나르고 구호품을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요, 장애인 대상 반찬봉사, 노후가정 주거개선사업, 김장봉사, 목욕봉사, 연탄나눔, 세탁봉사, 농촌일손돕기, 병원 중환자실 도우미, 복지시설 방문봉사, 어버이결연사업, 북한이탈주민 정착도우미, 희망풍차 결연활동 등 쉼 없이 봉사활동을 펼쳤다.
나는 청주부녀적십자봉사회의 봉사활동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청주부녀봉사회는 청주시 미평동에 있는 미평중고등학교(소년원)를 매월 한 번씩 20여년간 방문했다. 미성년자들의 교정교육을 위한 운영기관에 봉사원들은 매월 한 차례씩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방문했다. 대개 범죄를 접하게 되는 아이들이 자란 환경은 열악하서 부모들이 면회조차 오기 어려운 처지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녀 봉사원들이 매월 한번씩 직접 조리한 음식을 가지고 방문하였고, 이날만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실의에 찬 아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다.
처음엔 운동장 가득 까까머리 아이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인원이 점점 줄고 시설통합으로 더 이상 방문할 수 없게돼 마지막으로 방문하게 된 날, 봉사원들이 눈물에 젖어 그간의 세월을 회고하던 순간이 또렷히 기억난다. 젊은 총각 선생님은 반백이 넘은 교장선생님이 되셨고, 젊고 기운찬 부녀자였던 봉사원들은 이제 그 또래 아이들의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시상식에 참석한 한 봉사원으로부터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은 "놀면 몸이 아픈데, 봉사하러 댕기면 하나도 아프지 않는다"고 하셨다. 젊은 30대때 아이들이 한창 자랄 무렵에 봉사활동을 마치고 어둑한 밤에 집에 돌아오면 탐탁치 않았던 남편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밖에서 밤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남편이 봉사하러 간다면 차에 태워주고 끝나면 데리러 온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봉사는 이것저것 따져가며 하면 못해."라는 말을 하였다.
서울에서 청주로 내려오는 길, 이 날은 쉴 법도 하신데 한 봉사원께서 내일 있을 국수봉사를 위해 집에 돌아가자마자 음식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쯤되면 봉사는 하루도 빼 먹을 수 없는 생활이다. 이런 마음을 갖고 사시는 봉사원들은 참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9년이 흐른 2019년 9월 25일 청주부녀적십자봉사회는 창립 70년이 되었다. 대한적십자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봉사회이지 않을까. 70년 세월 선배의 전통을 이어오고 오늘도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계신 청주부녀적십자봉사회 회원들. 앞으로도 건강하셔서 지역사회의 등불이 되어 주시길 기원해 본다.
적십자의 자원봉사활동은 1859년 이탈리아 '솔페리노의 전투'에서 시작되었다. 사업차 이탈리아 솔페리노를 지나던 스위스의 실업가 장 앙리뒤낭(1928. 5. 8. ~ 1910.10.30.)은 프랑스 사르드니아 연합군과 오스트리아군의 전쟁을 목격하며 깊은 충격을 받았다. 앙리뒤낭은 가던 길을 멈추고 인근 마을의 농촌 부녀자들과 소년소녀들을 모아 참혹한 전쟁터에서 아군과 적군의 구별없이 전상자들을 간호하였다. 그리고 이 날의 경험을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으로 정리하였다.
앙리뒤낭은 이 책에서 두 가지를 제안하였다. 첫째 상병자를 간호하기 위한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구호단체를 만들자. 둘째 군대 부상병들을 돌보는 군의료 요원들과 군목들을 보호하고 이들의 의료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국제적인 조약을 체결하자고 제시하였다. 그가 추구한 인도주의에 대한 바람은 오늘날 187개국 1억명의 자원봉사자를 가진 적십자라는 조직과 제네바협약으로 구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