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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Jul 19. 2021

군대에서 겪었던 무서웠던 일

군대 시절 초소근무를 서면 시간이 정말 안 갔다. 다음 근무자가 빨리 와서 교대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자주 할수록 시간은 오히려 느리게만 갔다. 그런데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초소에서 선임들이 그렇게 썰을 풀었던 것도 어쩌면 시간 빨리 가라고 한 건 아니었을까. 후임병으로 경계근무 서면서 선임병이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선임병이 되어서는 그동안 주워들은 얘기에 살을 보태 썰을 풀곤 했다. 대화 주제라 봐야 대부분 군대에서 도는 이야기였는데, 그중에는 괴담 이야기도 있었다.

군대에서는 사건사고가 많았다. 믿거나 말거나 이상한 괴담들이 많이 떠돌았다. 실제 내가 있었던 사단 내 옆 부대에서 있었던 일인데, 운전병이 부대 내에서 정비를 하다 사고를 당해 헬기로 후송됐지만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여기까지 팩트) 들리는 얘기로는 어머니께서 홀로 외아들을 키우다 군대에 보냈는데 허망하게 사고가 났다고 했다. 장례를 마치고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밤에 사고당한 병사를 봤다는 사람들이 나왔고, 나중에 부대에서 원혼을 달래기 위해 굿을 했더니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오싹하긴 해도 나도 이런 이야기를 초소에 가면 후임병에게 "너 그 얘기 들었어?"하며 졸지 말라고 들려주곤 했다.

그런데 이런 괴담보다 더 공포스러운 상황이 왔다. 귀신을 본다는 후임 H가 우리 중대에 배치된 것이다. 군대에 오기 전 사회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왔다는 H는 힘도 좋고 순해 보이는 친구였다. 뺀질 대지 않고 일에 앞장서는 친구라 잘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이 지냈는데 어느 날 H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은 귀신이 보여서 어릴 적에 복숭아나무로 굿도 했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대개 빤히 표가 나 보이는데 태연스럽게 말하는 녀석을 보면서 믿고 싶지 않지만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점이 께름칙했다.

그러고 몇 달 후 우리 부대가 전방 작계지역에 정비작업을 1달간 나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숙식을 하며 낮에는 고된 작업을 하고 야간에는 24인용 크기의 텐트에서 모두 잠을 잤다. 주변에 민가가 없고 외진 곳이어서 밤은 정말 어두었다. H는 내 옆에서 잠을 잤는데, 텐트 출입구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잠을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방금 뭐가 살짝 텐트를 열어보고 갔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발소리도 없었는데, 아무 소리도 없었는데. 그때부터 H와 함께 있으면 뭔 소리를 할지 몰라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한밤에 H와 초소근무를 서게 되었다. 별생각 없이 근무를 시작했다. 후임을 앞에 세우고도 나 스스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좌우 경계를 하면서 고개를 돌려 좌측을 보고 천천히 우측 끝까지 고개를 다 돌렸을 때 H가 "방금 좌측에서 뭔가가 지나갔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분명 방금 전까지 내 고개는 좌측에 있었고, 아무 소리도 없었는데 뭔가가 지나갔다고 하니 심장이 빠르게 뛰고 신경이 바짝 쏠리며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녀석이 본다는 귀신이라면 내 눈에 보일 턱이 없고, 사람이라면 가만히 있다가 놓치면 큰 일을 치를 것이다. 순간이지만 생각이 육체를 깊게 지배해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곧바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정신을 가다듬고 총구를 앞으로 향하고 내가 앞장서며 이동로로 걸음을 내디뎠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소리를 죽이고 통로가 꺾이는 끝까지 갔지만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귀신인가, 사람인가. 우리는 다시 초소로 돌아왔다. 그때부터는 정말 초감각적으로 예민한 상태로 경계를 섰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오로지 집중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발자국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고 나는 몸을 숨긴 채 총구는 그쪽 방향으로 경계했다. 그리고 나는 암구호를 외쳤다. 다행히도 그 사람들은 우리를 교대하러 온 근무조였다. 시간을 보지 못했는데 뒷 근무조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서 교대가 1시간 가까이 늦어졌다는 사실도 후에 알았다. 그렇게 나는 막사로 내려와 88 담배를 몇 대 연달아 피우고 몸을 진정시킨 후 잠자리에 들었다. 실체를 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상황이 주는 공포가 너무나 컸다. 그 후로는 H와 같이 근무 선다고 하면 뭔가 생길 것만 같아서 신경이 더 곤두서고, 피하고 싶고 그랬다.

이때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최근 인터넷에서 영화 랑종 나홍진 프로듀서가 "귀신 있다고 믿어서 공포영화를 못 본다."는 인터뷰 기사 제목을 읽고 나서다. 군대를 제대한 지가 25년이나 지났지만 그때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왠지 찝찝하다. 어둑한 저녁 철조망 너머 무덤 옆에서 어떤 여성이 대답도 않고 홀로 불을 피운채 앉아 있어 부대원들이 출동한 적도 있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날 밤이 더 무서웠다. 직접 본 것은 없었지만, 상황이 주는 으스스함은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그 일을 다시 떠올리니 궁금해진다. 그때 H가 봤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출처: 네이버 웹툰 '노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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