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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Jul 28. 2021

부모님 영상을 찍어놔야겠다

가족과 주말을 온전히 보내고 월요일 새벽 다시 일터가 있는 광주로 내려갔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편도 215km. 중간에 휴게소에서 2번 정도 쉬며 허리도 펴고 졸음도 쫓고 쉬엄쉬엄 가니 거진 3시간이 걸렸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주말 사이 그룹웨어에 올라온 경조사부터 살폈다.


앗. 서울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배 아버님 부고가 떠 있었다. 발인은 바로 내일.


갈까, 말까 하는 고민이 잠시 들었다. 코로나 시기라 상갓집을 못 가도 다들 이해할뿐더러 내가 있는 광주에서 장례식장인 대구까지는 거리로 200km 넘게 떨어져 있어서 게시판에 적힌 계좌로 송금할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부친상인데..


함께 근무할 때 아버님에게 병이 생겼다는 얘기를 선배에게 여러 차례 들어서 알고 있어서인지 남일 같지 않아 다녀와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는 말도 있고. 그래서 퇴근하고 차를 몰아 장례식장에 가기로 했다.


이왕이면 혼자 보다 둘이 낫다고 출발하기 직전에 대전에 있는 직장동기한테 전화해 "상갓집 갈 거야?"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동기는 오늘 휴가라 게시판을 못봤다면서 자기도 지금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만나 같이 들어가기로 했다.


KTX 타고 내려오는 동기보다 내가 더 늦을 거라 생각했는데, 9시 넘어 먼저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20분쯤 기다리니 동기도 도착하고 우리 둘은 같이 장례식장으로 걸어갔다. 맞은편에서 선배는 집안 어른과 대화하며 밖으로 나오다가 우리와 마주쳤다. 얘기 않고 갔기 때문에 선배는 우리가 올 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으로 반가워했고 고마워했다.


조문객이 거의 빠져나간 시간. 가까운 식구들만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우리는 조문을 하고 테이블에 앉아 차려진 음식으로 늦은 저녁을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로 전화로 가끔 안부를 전해도 원거리에 떨어져 있어 얼굴을 못 본 지 오래되었다.


우리 옆 테이블에는 얘기로만 듣던 형수님과 사진으로 봤던 아이들이 있었다. 선배가 형수님에게 "옛날에 서울 근무할 때 우리 부서에 아이 안 생겨서 오래 고생한 후배 있다고 했지? 이 친구가 그 친구야."라고 나를 소개하니 형수님이 아~ 하며 대번 알아차리는 눈치다. 일어나 정중히 인사하고 다시 앉았다.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돌아가신 어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선배에게서 저간의 사정을 쭉 들을 수 있었다. 아버님 몸이 안 좋아 병원과 집을 오가며 지냈고, 갑작스럽게 위독해지셔서 내려왔다가 임종을 지켰으며, 장지는 00으로 갈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버님 건강 얘기가 나오니 동기도 부모님 건강 문제를 걱정하고, 우리 사이에는 서로 동년배들의 공감대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선배는 우리에게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영상을 많이 남겨두라고 조언했다. 선배 아버님이 병환에 든 지가 해수로 5~6년. 선배는 어린 자녀들이 할아버지를 건강하지 않은 사람으로만 기억할까 봐 동영상을 찍었다고 했다. 명절에 본가에 가면 아버지에게 애들한테 해 주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달라고 찍고, 또 기회 되면 찍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휴대폰에 간직해 왔단다.


그렇게 선배는 모아둔 영상을 아이들에게 때때로 보여주면서 할아버지가 예전부터 이렇게 아팠던 사람이 아니라 과거에는 건강했던 사람이었다고 말해주었단다. 그리고 본인도 아버지가 생각날 때 가끔 휴대폰을 열어 보고,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생각날 때마다 휴대폰을 보면 된다고 하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아이가 어려서 커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자주 찍고 있지만, 정작 나이 드신 부모님을 주인공으로 찍은 영상은 내 휴대폰에 없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자주 뵙지도 못하고 가끔 통화만 하고 있지만 이제라도 선배 따라서 부모님을 영상으로 찍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사이니깐.


오래도록 얘기하고 싶었지만 다음날 조기출근도 있고 갈길도 멀어서 자리를 일어났다. 동기는 역으로,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운전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그런지 알 수 없지만 광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에는 차도 없고 내내 어둡기만 했다. 신기한 건 오늘 하루 600km 넘게 운전을 했지만 크게 졸리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밤 12시가 넘어서 광주에 도착했다. 아침에나 보겠지만 운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던 아내에게 잘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곧바로 잠이 오지는 않았다. 분주히 보낸 하루의 여파일까, 긴장이 풀려서일까. 몸은 슬슬 피곤해졌다. 그래도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주 전 이야기입니다)


사진출처: 정식품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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