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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Jun 10. 2021

하루 두 쪽 <논어> 읽기

4개월 4일 만에 <논어> 한 권을 끝내다


10년 전 아내가 서예작품을 선물받았다. 한 지역신문이 주최한 블로그 시민기자 활동을 통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분들을 만났는데 그때 알게 된 서예가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변변한 그림 하나 없던 우리 집에 이렇게나 근사한 작품이 오다니! 기분이 좋았다. 예술에 조예가 얕은 내가 봐도 품격이 느껴졌다. 하지만 좋은 것도 잠시. 멋진 작품을 받아놓고도 이 순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이 절절하게 와닿는 건 뭐란 말인가.


"근데 이걸 뭐라고 읽어야 하는 거야?”
“대체 무슨 뜻이야?"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영어만 중요한 게 아니고, 한자도 알아야지. 읽을 수 있는 몇 글자를 가지고 포털에 검색했다. 글의 원문을 찾았다. 이 글은 바로 유교 경전 <논어>에 나오는 군자유구사(君子有九思)였다. 핵심이 되는 글자 하나씩을 땄다는 것과 글의 의미를 알게 되니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 작품을 집에 걸어두고 지나면서 보고 있다.  

군자유구사 [君子有九思] (두산백과)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생각해야 할 9가지가 있다. 사물을 볼 때는 분명하게 보기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빠뜨리지 않고 똑똑히 들을 것을 생각하며, 얼굴빛은 온화한지를 생각하고, 몸가짐은 공손한지를 생각하며, 말을 할 때는 진심으로 할 것을 생각하고, 일을 할 때는 신중한 지를 생각하며, 의심날 때는 물어볼 것을 생각하고, 성낼 때는 겪게 될 어려움을 생각하며, 이익을 얻었을 때는 의로운지를 생각해야 한다 [孔子曰 君子有九思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


살면서 ‘논어, 맹자, 노자, 장자'는 한 번쯤 다 읽어보고 죽어야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행은 개뿔 못하고 있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논어부터 당장 시작하기로 했다.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슬기바다 논어를 샀다. 그런데 논어가 어디 말랑말랑하게 넘어가는 책이던가. 결국 초반만 열심히 읽다가 덮었다. 그랬더니 머릿속엔 '학이시습지'랑 '교언영색' 정도만 남았다. 책은 책꽂이 한 켠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최근 들어 논어를 다시 집어 들었다. 지난 2월 내 삶에 변화가 왔다. 팀장 발령으로 타 지역에 가서 근무하게 된 것. 임무도 낯설고 지역도 낯설고 사람도 낯선, 모든 게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해야 했다. 그래. 3개월만 잘 넘겨보자. 그러려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겠지. 책 읽을 시간이 있으면 규정이나 문서를 더 봐야겠지 싶어서 책을 안 싸가려고 했는데...그래도 아예 책을 안 가져가자니 허전했다.


두꺼운 책 말고 딱딱 끊어져 있는, 아무 장이나 펼쳐도 언제든 읽을 수 있는 책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논어를 다시 책꽂이에서 꺼내 들었다. 이 책이 현재 상태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많이도 말고 하루에 딱 두 쪽씩만 읽자. 매일 아침 빼먹지 않고 챙겨 먹는 영양제처럼. 그렇게 나는 매일 두 쪽씩 논어를 읽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해서 읽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다시 주중에는 아침에 일어나 이 책부터 펼쳤다.


그렇게 4달 하고 4일이 흐른 지난주 금요일. 나는 처음으로 논어를 완독했다. 책 읽기를 끝까지 했다는 기쁨과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이 차올랐다. 내가 욕심을 부렸다면 책을 끝까지 못 읽었을 수 있지만, 조금씩 하겠다고 마음먹었더니 결국 거북이 달리기처럼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논어는 나에게 어떤 책이었나? 수천 년 전 쓰인 책이지만 내가 느끼기엔 올드한 책이 아니었다. 고전이란 게 그렇듯이, 시대를 초월하여도 현재의 시간, 내 상황에 유의미한 내용들이 많았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많이 그었다. 일일이 언급할 순 없지만, 다 외우고 싶은 구절들이다. 상대를 대할 때, 자신을 마주할 때, 배워야 할 때, 예를 갖춰야 할 때 등 다양한 상황과 관계에 대해 곱씹어 볼 부분들이 많았다. 세상은 발전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덕목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잘 들어맞는 게 아닌가 싶다.


논어를 한 번 쭉 읽고 나니 다시 논어를 처음부터 읽고 싶어 진다. 목표는 같다. 하루 두 쪽씩. 대신 내가 처음 읽었던 책과 함께 다른 해석을 하는 책을 함께 읽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는 명로진의 <논어는 처음이지?>를 골랐다.


어느 책에서 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너무 맘에 들어서 적어놓은 구절이 있다. '만 가지 발차기를 한 번씩 한 사람은 무섭지 않다. 한 가지 발차기를 만 번 하는 사람이 무섭다.'는 글이었다. 많은 책을 읽는 것도 의미 있지만, 한 책을 깊이 있게 보는 것도 값져 보인다. 40대 중반, 푸릇함을 넘어 익어가야 할 나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시작한다.

하루 두 쪽 <논어>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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