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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Sep 26. 2021

D. P. 보고 떠올린 군대 시절 기억

글이나 드라마나 마찬가지다. 시작이 재미없는데 나중이 재밌을 리 없다. 도입부터 끌리면 자연스럽게 다음 장, 다음 편을 보게 되어 있다.


얼마 전 요즘 핫한 넷플릭스 드라마 <D. P.>를 다 봤다. 스토브리그 이후에 내가 가장 몰입했던 드라마였다. <D. P.>는 탈영병을 잡는 군무이탈 체포조 이병 '안준호'와 상병 '한호열'이 각기 사연을 가진 이들을 쫓으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좀 씁쓸했다. 사람을 영외로 내모는 군대 내 상황이 그려졌고, 군 복무 시절 겪었던 안 좋은 기억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병장 시절이었다. 제대를 3달 정도 남겨놨을 때였다. 부대에 훈련이 있었다. 대대원이 대부분 훈련 나가고 초소 근무할 군인들만 중대별로 소수 남았다. 일주일 내내 영내가 고요했다. 근무 서고 쉬고 근무 서고 쉬고. 어느덧 훈련 마지막 날이 왔다. 이제 모두 곧 돌아오겠구나. 어둑어둑해져 가는 저녁 시간, 앞 중대 A후임병과 초소 근무를 마지막으로 서고 내려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대에서 인원을 체크하는데 A후임병이 안 보인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A후임병이 사라졌다. 보고가 되었는지 곧바로 헌병들이 출동했다. 헌병대는 나를 불렀다. 대대 상황실에 불려 갔는데 거기에 여러 명의 헌병들이 모여 있었다. 계급을 보니 상사도 보이고, 병들도 보였다. 분위기가 정말 무거워 숨이 막혔다. 곧이어 그들은 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A후임병이 사라진 이유를 나에게서 찾으려고 다그쳤다. 네가 마지막에 같이 근무한 선임이니 뭘 알고 있는 게 있지 않느냐면서. 나를 조사하던 헌병이 이후부터 계속 같은 말로 나를 몰기 시작했다.


"아니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왜 사라지냐고. 니가 초소에서 팼지?"

"아닙니다."

"사실대로 말해 봐. 니가 초소에서 걔 팼지? 니가 패서 탈영한 거 아니냐고?"

"그런 일 없습니다."


마치 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내 입에서 "네"라고 대답하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사실이 아닌 걸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당했어도 후임에게는 똑같이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항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상황실로 전화가 왔다. A후임병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들어 보니 군대 울타리를 넘지 않았고 교회 내에 숨어 있다가 잡혔다고 했다. 이제 A후임병을 데려다가 조사하면 나올 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A후임병 중대에 상병 선임이 있었다. 이 녀석이 훈련을 나갔다. 한 주일 간 꼴 보기 싫은 선임을 안 볼 수 있어서 마음이 너무 편했는데, 부대로 복귀하는 날짜가 다가오니 마음이 괴로웠던 것이다. 그리고 훈련에서 복귀하는 날, 그 불안감을 누르지 못하고 튕겨져 나간 것이었다. 영내를 벗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영화 <D. P.>를 보니 그 일이 떠올랐다. 희한하게도 군대 시절 기억은 오래도록 각인된다. 그날 헌병에게 억울하게 취급받은 일은 군생활을 마친 지 25년이 지났지만 잊히지 않는다. 그래도 요즘 군대는 많이 나아졌겠지? 매일 밤이면 휴대폰으로 가족들과 전화통화도 한다던데.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마당에 타인의 폭력에 의해 내면이 상처 받고 좌절하고 인생을 망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되리라고 본다. 20대. 얼마나 아름다운 나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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