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적십자 다이어리
10년 전 요즘처럼 따뜻한 봄날, 후배는 4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결혼하면서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사람 적은 충북적십자사에서 유일한 후배마저 떠나고 나니 나는 입사 8년 차에 다시 막내가 되었다.
인사발령이 났다. 후배가 하던 사회봉사를 맡게 되었다. 그럴 거라 예상했다. 구호업무를 맡은 지 9개월 만의 이동. 재원조성(기부금, 홍보) 업무를 4년 반하고 구호담당으로 발령 났을 때 나는 이 업무를 3년은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업무 적응이 끝나면 대학원에 지원해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혼자 궁리하고 있었는데, 이번 발령으로 나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때만 해도 사회봉사 업무는 주로 여성이 맡았다. 아마도 적십자봉사원 대다수가 여성이고 봉사회 자문조직인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를 전담해야 했기 때문이리라.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나는 10년 이상 여성이 맡아오던 사회봉사 업무에 뛰어들게 되었다. (지금은 다 같이 많이 한다)
일복 많은 사람은 어딜 가도 일이 쫓아온다지. 아니, 이번 경우에는 일이 나를 '어서 오셔'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매년 4월이면 전국의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들이 한 곳에 모여 총회를 개최한다.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진행하는데, 1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충북 총회가 딱 1년 앞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500여 명 규모에 내외빈도 많아서 행사면 행사, 의전이면 의전 나름 신경 쓸 게 많은 총회다. 후배는 가고, 나는 투입되고. 임재범의 고해처럼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가 내 심정이었다.
매년 치러지는 총회가 뭐가 다르겠느냐 할 수도 있다. 4년마다 개최되는 올림픽으로 그 나라의 국격을 보여주듯이, 14년 만에 돌아오는 총회이다 보니 전국에서 찾아오는 자문위원들에게 지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각별히 신경 쓸 수밖에 없다. 14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꽤 많이 변했을 기간이 아닌가. 제50차 총회는 2011년 4월 13일과 14일 양일로 잡혔다. 잘 맞아떨어진다면 청주 무심천의 아름다운 벚꽃을 볼 수 있는 시기였다.
행사란 게 성공적으로 치러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잘 맞아야 한다.
첫째, 날씨가 좋아야 한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리면 행사가 시작부터 어긋날 수밖에 없다. '기상청에서 워크숍을 해도 비가 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세상 일은 예측할 수가 없다. 더욱이 1년 전에 날짜가 잡힌 행사다. 그래도 다행히 총회가 실내행사라서 이 부분에 대한 걱정은 일부 덜었다.
둘째, 장소가 좋아야 한다. 500명이 한 자리에 모여서 회의하고 식사하고 잠을 잔다. 그만한 깔끔한 공간이 먼저 있어야 한다. 때마침 L호텔이 새로이 생겨서 이 부분은 해결되었다. 여기 아니면 대안도 없었다.
셋째, 행사내용이 알차야 한다. 이 부분이 앞으로 1년 동안 채워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였다.
총회 준비에 맞춰 자문위원회 임원단도 새로이 꾸려졌다. 경험과 덕망을 갖춘 K위원장이 총회를 위해 다시 한번 위원장을 맡았고, 감각 있는 L위원과 J위원이 부위원장과 총무를 맡았다. 사무국은 본사,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와 수시로 협의하면서 프로그램을 하나씩 확정 지어 나갔다. 특강강사는 미래학자 박영숙 대표(유엔미래포럼)를 일찌감치 초빙키로 했다. 청주와 가까운 대전에서 박영숙 대표가 특강 하는 날 K위원장과 함께 찾아가 만난 자리에서 일정 등을 확정했다. 유명강사는 강의도 뛰어나지만 조건이 명쾌하다는 걸 알았다.
무대와 영상은 업체를 선정하여 진행하였다. 행사장 뒷면에 자원봉사 활동을 상징하는 커다란 현수막을 제작하여 게시키로 했다. 1일 차 저녁 특별만찬과 공연이 중요했는데, Y위원이 방송인 쪽으로 인맥이 넓으셔서 그분 덕분으로 전문 방송사회자를 기부 차원에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렇게 점검과 재검을 계속 거친 후 드디어 행사 당일 전국의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들을 맞이했다.
결과적으로 1박 2일간의 행사는 큰 문제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늘 긴장의 연속이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개회식이 잘 마무리되니 이후는 술술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특별만찬 공연도 흥겨웠다. 특히, 충북 자문위원들은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연습하여 준비했던 공연을 직접 선보였는데 이색적이기도 했고 참가자들이 함께 따라 하는 등 호응이 좋았다. 다음날 오전 회의에서는 지난해를 마무리하는 결산과 새해 봉사활동에 대한 후원계획도 의결되었다.
우리는 가용할 수 있는 자원 내에서 최대한의 프로그램을 선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충북 자문위원들은 돌아가는 버스마다 위원들이 일일이 먹을 수 있도록 떡을 준비하는 세심한 정성도 놓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행사기간 내내 날씨가 맑았다. 전국의 자문위원들은 청주 무심천 도로에 만개한 벚꽃들을 보면서 돌아갈 수 있었다.
행사의 삼박자를 이야기했지만 하나가 더해져야 하지 않을까. 준비하는 사람들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사무국 전 직원들, 행사를 지원하기 위해 나온 도내 적십자 봉사원들, 그리고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들 모두가 합심해서 정말 노력했다.
회의는 회의대로, 공연은 공연대로 짜임새 있는 총회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잘 진행된 행사는 그 조직을 더욱 단단하고 끈끈하게 만들지만, 잘못 진행된 행사는 그 조직을 와해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이 행사를 통해 배우고 느꼈다. 전국 총회를 거친 후 충북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는 더욱 끈끈하고 화기애애해 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매년 진행되던 총회가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연기되었다. 총회가 연기된 해는 이번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에도 벚꽃은 아름다움을 뽐낸 뒤 꽃비가 되어 떨어졌다.
2025년 무렵이면 충북에서 다시 전국 총회가 열릴 것이다. 그때는 누가, 또 어떤 총회를 준비하여 전국에서 모인 적십자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들을 반길 것인가.. 안 올 것 같지만 항상 시간은 다가온다. 행사도 의전도 함께.
1955년에 조직된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는 이름처럼 조금은 특별한 조직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봉사회이지만, 다른 봉사조직을 후원하거나 자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바자를 통한 기금 마련 및 후원, 봉사회 육성 및 훈련 지원, 사업 후원 등 다양한 사업을 한다. 전국적으로는 470여 명, 충북에는 26명의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들이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