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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Feb 08. 2022

빌런이 옆 집에?

몇 주 전 숙소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입주자가 써 붙인 글을 보았다. 밤에 벽을 두드리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파트보다 방음이 안 되는 오피스텔에서는 쿵쿵 대는 소리, 남녀 속닥이는 소리, 술판 벌어지는 소리, 문 열렸다 잠기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게시자가 한 번의 일로 이런 글을 썼을 리는 만무하다. 누구인지 알 수는 없으나 참다 참다 더는 참을 수 없어 글을 썼을 것이다.


별 사람 다 있네 하고 지나쳤다. 잊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새벽 나도 같은 경험을 했다. 잠결에 쿵쿵쿵쿵 벽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잠이 깼다. 어둠 속에서 휴대폰을 열어보니 2시 50분이었다. 뒤척이다 결국 방에 불을 켰다. 빌런이 옆 집이었던 거야? 그동안은 반대편 벽을 두드리다가 이번에는 내 쪽 벽을 두드린 건가. 깊은 잠을 자서 나만 몰랐던 건가. 온갖 생각이 그 짧은 시간에 스쳐 지나갔다.


나를 깨우고 그는 자는지 두드리는 소리는 더는 없었다. 그렇지만 소리를 생각할수록, 떠올릴수록 온몸의 감각은 더 예민해졌다. 위아래 층간소음만 있는 줄 알았더니 벽간소음도 심각하구나. 엘리베이터 다음 게시자가 내가 되지 않기를, 이웃과 마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새 새벽 6시 38분. 자꾸 하품이 나고 몸이 늘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창밖의 여명만 기다리고 있다.



<출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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