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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Jun 26. 2022

처음 야구장에 갔던 때를 알기 위해 KBO에 연락하다

같은 경험을 해도 남은 기억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최근 나는 아버지와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전화로 여쭤보았다.


"아버지, 저 어릴 때 아버지와 야구장에 갔었는데 그때가 몇 년도 였는지 기억나세요?"

"내가 니랑 야구장에 갔다고? 아닌 것 같은데."라는 엉뚱한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때와 혼동하시는 건가. 어쩌면 나에게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날일지도 모르겠다.




때는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나는 당시 부산에서 가장 동이 많다는 연산동, 그중에서 연산6동에 살았다. (연산동은 9동까지 있음). 우리는 언덕 위 단층집에 세 들어 살았는데, 그 집 옥상에 올라가면 멀리 사직구장이 조그맣게 보였다. 야간경기를 하는 날에는 조명탑 불빛이 환하게 켜졌고, 함성이 크게 들리면 롯데가 잘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환호하는 소리를 듣다 보면 '저곳에선 뭐가 저리 신이 날까?' 어린 마음에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야구장에 가서 경기를 본다는 건 나에겐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아버지가 이번 주말에 야구장에 가자고 하셨다. 그것도 프로야구 개막전이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표를 구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야구장에 간다는 사실에 꽤나 흥분했다. 경기날 수많은 관중을 보면서 이 많은 사람들이 환호해서 우리 집까지 소리가 들렸구나 생각했다. 승패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경기가 한참 진행 중이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스파이더맨도 아니면서 그물망을 기어 올라가는 잔상이 뇌리 속에 남아 있다. 그날이 내가 궁금해하였던 날이다.




나만 기억하고 있는 야구장 추억이 언제였는지 궁금해서 KBO(한국야구위원회)에 전화를 했다.


“KBO죠? 어릴 적에 사직구장에서 개막경기를 봤는데요. 그 경기가 몇 년도였는지 알 수 있을까요?"

수화기 너머의 직원은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어느 팀 경기였나요?"

“롯데랑 청보핀토스요.”

“확인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30분쯤 지났을 때 KBO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1987년이었습니다.”


영화 제목이 '1987' 아니던가. 역사에서도 인생사에서도 ‘1987’이 의미 있는 숫자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추억 하나를 온전하게 복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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