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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Feb 22. 2020

나는 우보다 - 호칭파괴의 기억

나의 적십자 다이어리

"그라운드에 선후배는 없다. 오직 선수만 있을 뿐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던 히딩크 감독은 한국 특유의 뿌리 깊은 위계질서를 깨기 위해 호칭파괴를 단행했다. 축구는 경기 외적인 요소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하에 합숙훈련 시 최고참과 신참을 룸메이트로 묶는가 하면, 그라운드 안에서도 서로 이름을 불러 소통하도록 했다. 대화가 단절된 시스템은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러한 특단의 조치로 대표팀은 끈끈한 조직력을 갖춘 원팀(One Team)이 되었고, 결국 ‘4강 신화’를 쓰게 되었다.  

 

많은 기업들이 호칭파괴를 하고 있다. 선두주자인 CJ는 2000년부터 서로의 이름 뒤에 ‘님’자를 붙이고 있다. 카카오는 영어 이름이나 닉네임을 직장에서 쓰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직급 대신에 '매니저'나 '프로'라는 호칭을 쓰는 기업도 있다.


이런 참신한 변화는 바깥 조직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근무했던 충북적십자사에서도 이런 시도가 있었다. 2010년 1월 신임 사무처장님이 부임하셨다. 신임 사무처장님은 충북 출신으로 우리 지역을 잘 알고, 얼리어 답터인데다, 강골에 뚝심이 있는 분이었다. 오시자마자 직원들에게 변화하라는 주문을 많이 하셨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전 직원에게 하나의 결정을 통보하셨다.


“이제부터는 직책을 부르지 말고 서로 아호로 부르겠습니다.”

“예? 아호요?”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단재 신채호, 백범 김구와 같은 훌륭한 위인들이 이름 앞에 썼다는 그 아호 말이던가. 모두가 뜨악했지만, 우리는 순순히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누가 변화를 거역하리오. 드디어 나도 호가 생기게 되는구나.  


“그런데 뭐라고 짓지?”  


고민은 깊어져 갔다. 처음에는 누가 호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렇게 혼자서 궁리를 했다. 이왕 짓는 거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보는 의미로 만들면 낳겠지? 너도나도 알게 쉽게 만들어야겠지? 그래도 아호에 뜻이 담겨야겠지? 차라리 영어로 지으라고 하셨다면 '톰'이나 '제임스', '브라이언'이나 '마이크' 중에서 아무거나 하나 골라 쉽게 결정하였을텐데 말이다.


그러다 사자성어를 검색하는데 우보(牛步)라는 단어가 눈에 띠용 들어왔다. 호시우보(虎視牛步 - 호랑이처럼 예리하고 무섭게 사물을 보고 소같이 신중하고 행동한다), 우보천리(牛步千里 -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 우보가 들어간 게 두 개나 있네. 뜻도 얼마나 근사한가.


“그래. 결정했어. 나는 우보로 할래. 우보.”     


사무처장님 방에 결재 받을 게 있어 들어갔다가 “제 호는 우보로 정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꼭 자기답게 만들었구만.”하는 평가를 들었다. 아마도 느긋한 성정을 가진 나에게 속도를 주문하고 싶으신데 느릿한 소걸음이라고 만들어온 것에 대한 반어적인 표현처럼 들렸다. 그래도 이왕 지은거 우보가 좋았다. 다른 걸 만들어낼 머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지사회장님을 비롯한 10여명의 직원들은 각자 아호를 만들었다. 나처럼 어딘가에서 따오거나 작명한 직원도 있었고, 지사회장님에게 청해서 회장님이 호를 지어준 직원도 있었다. 선도, 송암, 반송, 우보, 상촌, 분도, 오각 등 정말 다양한 이름과 뜻을 가진 아호들이 만들어졌다.


아호가 만들어졌으니 이제 부를 일만 남았다. 서로 이름이나 직급을 빼고 아호를 부르라고 하셨지만, 오랫동안 해 오던 걸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습관이 그래서 무서운 거다. 아호를 부르려다가도 선배들과 눈이 마주치면 웃음부터 났다. 호칭이 입에 잘 붙지 않으니 민망하기 일쑤였다. 때론 그전처럼 호칭을 부르다가 사무처장님이 나타나시면 아호를 부르기도 했다. 뭐든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으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걸 체감했다.


아쉽게도 충북적십자사의 '아호 프로젝트'는 끝내 정착되지 못했다. 사무처장님이 8개월만에 다시 본사로 발령나서 가셨기 때문이다. 사무처장님이 떠나시고 우리는 더 이상 아호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무척이나 생경한 일이었지만 상당히 앞선 시도였고, 색다른 도전이었다. 호칭파괴를 통해 단기에 큰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오랜 전통을 가진 조직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그렇지만 좀 더 유연하게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일하며 상호 존중하는 수평조직을 만들고자 했던 사무처장님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적십자사에서 이런 호칭파괴를 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미래는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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