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노올자"
방학에 들어간 초2 딸아이가 책방에 앉아 있는 나를 불렀다.
그런데 뭘 하고 놀지? 산타가 준 레고도 다 맞췄고, 몸이 피곤해서 칼싸움은 하기 싫은데..
책상에서 일어나는데 책꽂이 위에 지난여름 부모님과 동생이랑 펜션에 다 같이 놀러 갔을 때 사 갔던 화투가 보였다.
"아빠랑 그림 맞추기 할까?"
화투를 집어 들고 거실로 나가니 아이는 흥미로워하고 아내는 아이한테 무슨 화투를 가르치느냐며 핀잔을 준다.
"바둑, 장기, 체스, 화투, 카드 다 두뇌게임이야. 우리 외가 친척들 알지. 그 사람들 어릴 때부터 다 화투치고 놀았다고"
실제로 3남매 외가 친척들은 추운 겨울 시골집에서 어릴 적부터 화투치고 놀았는데, 훗날 셋 중 하나는 S대를 갔고, 하나는 K대를 갔다. 물론 화투 쳐서 간 건 아니지만 말이다.
거실 러그에 화투를 짝 깔고 아이에게 기초부터 가르쳤다. 1, 2, 3, 4, 5, 6, 7, 8, 9, 10, 똥, 비, 조커는 제외.
러그에 4열 횡대 12줄을 세우며 그림을 쫙 깔아주고 다음으로 광, 청단, 홍단, 초단, 고도리를 알려주고 맞고를 시작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영화 타짜의 명대사다.
오늘 나의 손은 아주아주 느리다.
하도 오랜만이라 맞고를 몇 장 가지고 하는지 기억도 안 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놓았다.
바닥에 8장 깔고, 각자 10장씩.
아이 손이 작아서 화투패가 한 손에 안 쥐어진다. 바닥에 5개 내려놓고 5개 쥐고 하는데 그마저도 다 보인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아이 패가 짝짝 잘 붙는다. 순식간에 고도리 달성하고 피까지 쓸어 모으더니 났다. 내가 고스톱의 의미를 알려줬더니 아빠에게 원고를 불렀다. 내가 허덕이던 중에 다시 홍단까지 완성. 투고를 불렀다. 그러더니 인생 첫 게임 15점을 달성하며 아빠를 이겼다.
여기서 아빠의 교훈 1. 초심자의 행운
"투자나 게임 등 어떤 분야에 막 입문한 초보자에게 행운이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초심자의 행운이라 부른단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잘 된 게 자기 실력이 좋아서 그렇게 된 건 줄 안다는 거지. 알고 보면 운인데 말이야. 잘 참고해."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이번 판은 내 패가 좋다. 아이는 같은 그림이 안 나와서 거둬가는 것 없이 바닥에 내려놓기만 한다. 그러다가 손에 쥔 9 쌍피를 바닥에 내려놓기에 내가 "그거 좋은 건데 내놓는 거야?"라고 하니 다시 거둬가려 한다. 여기서 잠깐.
아빠의 교훈 2. 낙장불입
"바닥에 이미 내놓은 패를 물리는 건 안 되는 일이야. 뭐든 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지. 자칫하면 실수할 수 있으니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도록 해."
그렇게 두 번째 판은 내가 이겼다. 이날의 승부는 이렇게 일대일 무승부로 마무리되었다.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너무 빠지면 위험하지만 적절하게 놀 줄 아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이가 날 보며 웃으면서 "아빠 우리 화투 할까?"라고 했다. 아내는 화투는 무슨 화투 나며 큰소리치고, 나도 기세에 눌려 워워워 아이를 달랬다. 이러다 진짜 타짜 만들라. 그래도 잘하면 올해 여름에는 아버지 어머니랑 같이 놀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