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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느낀 현기영, 한강 두 작가의 공통점

현기영 <사월에 부는 바람>, 한강 <빛과 실>을 읽고 느낀 점

by 포데로샤

어제 오전에는 반납할 책이 있어서 집 근처 도서관에 갔다. 무인 반납기계에 책을 넣고 3층 신간코너에 들렸는데 서가에 현기영 작가의 신작 <사월에 부는 바람>이 보였다. 현기영 작가는 소설 <순이 삼촌>을 통해 제주 4. 3 항쟁을 널리 알린 작가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책을 펼쳐 들고 <나의 글쓰기>라는 꼭지를 읽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과 시대의 아픔을 글로 쓰는 작가가 된 계기가 나와 있었다.


1948년, 그해 나는 여덟 살의 어린아이였다. 나의 고향 노형리에서 모든 것이 불타고, 주민 600여 명이 학살당할 때, 많은 아이가 어른들과 함께 죽었다. 그 아이들 중에는 나의 소꿉친구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직전에 성내로 이사 간 덕분에 그 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건 전적으로 우연이다. 그 아이들이 나 대신에 죽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우연히 살아남은 자로서, 무엇보다 작가로서 나는 죽은 그 아이들의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죽은 자들을 일깨워 발언하게 하고, 그들의 말을 산자에게 전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4월에 부는 바람, p12, 한길사>



이 구절을 읽으니 최근에 읽었던 또 다른 책이 떠올랐다. 한강 작가의 신작 <빛과 실>. 한강 작가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사람들의 아픔을 썼다. 이 책 <빛과 실>에서도 현기영 작가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이 담겨 있었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사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들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 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빛과 실, p16, 문학과지성사>



한강 작가는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 페이지에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적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2012년부터 5월 광주를 다룬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젊은 야학교사의 일기를 읽고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뒤집어야 한다고 깨닫고 소설을 써 갔다고 한다.


나와 무관한 일에 관심이 기울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두 작가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이 국가폭력으로 빚어진 시대적 사건과 겹치는 지점이 있었다는 점, 그 어린 시절 경험이 훗날 죽은 자를 통해서 산 자를 구하는 작가적 책무로까지 이어져 한국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킨 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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