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오석준 신부의 생명은 사랑입니다' 출연 후기
이번 책 <드라큘라가 무서워하는 회사에 다닙니다>에 들어간 글 중에 '누구나 처음은 두렵다'가 있다. 23년 8월, 군부대에 헌혈 출장을 나갔는데 헌혈버스에서 군복 상의 오른편에 숫자 '1' 스티커가 붙어 있는 사병을 보았다. 초회 헌혈자라는 뜻. 버스 안이 한산하고 대기자도 없어서 사병에게 다가가 "고등학교 때 헌혈할 생각은 안 하셨어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무서워서 못했다."는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어때요. 할만하죠?"라고 재차 물으니, 장병은 "네." 하며 짧은 답을 했고 알람이 울리자 헌혈증과 기념품을 챙겨 부대로 돌아갔다. 이걸 보면서 삶은 매 순간 처음을 만나고, 이때 용기 내어 부딪쳐 보면 두려움은 걷히고 어려웠던 일이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일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 것은, 내게도 인생 첫 도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라디오 방송 출연이었다. 3주 전, 출판사 편집장님께 연락이 왔다. 가톨릭평화방송 <오석준 신부의 "생명은 사랑입니다"> 프로에서 섭외 연락이 왔다며, 통화 끝나면 곧이어 담당 PD로부터 연락이 갈 테니 잘 받아보라는 내용이었다. 책을 냈으니 홍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라디오 PD님과 통화를 했고, 26일을 녹음일로 결정했다. 이런 기회를 얻은 것은 너무나 감사할 일이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작은 경험을 발판 삼아 조금씩 큰 경험으로 나아가고 싶었는데, 처음부터 1시간짜리 녹음이라니 내겐 너무나 과분한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PD님과 통화하고 나흘 뒤 이번에는 라디오 작가님에게 연락이 왔다. 내 책을 읽으셨다는 작가님과 사전 취재 형식으로 20여 분 인터뷰를 했다. 작가님은 질문지를 방송 3일 전까지 보내주겠다고 하시면서 또 너무 질문지대로 하면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조언해 주셨다. 그런데, 어디 그런가. 처음 해 보는 입장에서는 질문지만 따라 하기에도 어렵다. 하루라도 먼저 질문지를 받아서 준비하고 싶어서 조금 일찍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하고 끊었다. 그렇다고 마냥 질문지가 올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법. '뭐라고 질문이 올까?' 하며 스스로 질문과 답변을 만들기 시작했다. 쇼핑백에 적십자 관련 자료를 담아 다니면서 보았다. 방송 4일 전 질문지가 왔다. 폭넓게 질문을 뽑아주셨고, 그때부터 질문에 맞는 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26일 방송 녹음일이 왔다. 가톨릭평화방송은 명동성당 사거리에 있다. 예전에 명동에 있는 서울 본사에서 근무했고, 그곳에서 6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찾아가는 일은 출장 가는 것처럼 쉬웠다. 오후 3시가 녹음시간이지만, 청주에서 출발하는 거라 일찍 올라갔다. 1시 30분쯤 방송국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 1시간 동안 질문지를 봤다. 그리고 약속시간 30분 전에 방송국에 들어가 라디오 스튜디오가 있는 9층으로 올라갔다. 녹음하고 계시는 PD님과 간단한 인사를 하고 옆방에서 잠깐 기다렸다. 녹음을 끝내고 PD님이 오셔서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고, 오늘 진행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질문지 순서대로 하나요?"라고 물으니, 그건 그때그때마다 신부님이 다르게 한다고 했다. 처음이라 가급적 질문지 대로 하기를 희망했다.
스튜디오 부스 안에 자리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진행자이신 오석준 신부님이 오셨다. 신부님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신부님이 궁금해하는 헌혈 이야기에 답변드렸다. 그리고는 3시가 다 되어 녹음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신부님은 목소리도 좋으시고 말씀도 잘하셨다. 근래 목이 잠겨 소리가 높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물감이 없어 말하는데 불편하지는 않았다. 앞 타임에는 책 제목, 적십자의 역사, 적십자가 하는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후반에는 책과 개인적인 업무 경험을 중심으로 한 질문을 받았다. 질문지 대로 해 주시기를 요청드렸지만, 하다 보니 파생된 질문들도 자연스럽게 오고 갔다. 사전에 방송을 여럿 들어보니 대본을 읽으면서 하면 티가 많이 나 가급적 머릿속에서 정리한 내용으로 답변을 하려고 노력했다.
어느덧 1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중간에 답변을 하려는데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세 번은 왔던 것 같다. 나중에 방송분을 들어보니 PD님이 편집을 잘해주셔서 그런지 표가 안 났다. 역시 편집의 마술. 방송을 마치고 신부님과 PD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신부님은 바쁘신 지 자리를 일찍 옮기셨고, PD님은 생방송 중인 라디오 부스랑 여기저기 방송국 구경을 잠시 시켜주셨다. 그리고 기념으로 빈 스튜디오 안에 데려가 프사를 몇 컷 근사하게 찍어주셨다. 이날 방송은 긴장이 되었지만, 해 보니 뭐가 잘 됐고 뭐가 안 됐는지, 무엇을 더 보강해야 하는지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직접 경험해 봐야 내 자산이 된다. 책이 만들어 준 기회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 다음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인생 첫 라디오 녹음은 무사하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