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석탑을 대표하는 익산의 두 탑

미륵사지 석탑, 왕궁리 오층석탑

by 포데로샤

부여에 다녀오자마자 이번에는 익산에 가고 싶어졌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보고 나니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리 오층석탑이 궁금했고,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왕흥사 사리장엄구를 보고 나니 국립익산박물관에 있는 사리장엄구는 또 어떻게 다르게 빼어난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1월 마지막 일요일, 아내와 아이를 대동해 익산으로 향했다. 차로 1시간 20분 거리를 막힘 없이 달렸다. 우리가 먼저 찾아간 곳은 미륵사지 절터. 날씨는 맑았으나 바람은 한겨울답게 쌀쌀한 기운이 있었다. 시멘트가 발라져 있던 옛 미륵사지 석탑의 기억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정말 오랜만에 왔구나 싶었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서인지 미륵사지 주변은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절터가 워낙 넓어서 눈이 시원하고 마음이 뻥 뚫린 듯 답답함이 없었다. 관광객이 밀려들어도 북적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공간이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미륵사지 석탑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국보 제11호)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의 무왕(600~641)이 부인과 함께 용화산 밑 큰 못가에서 미륵삼존을 친견한 후, 왕비의 발원으로 법당과 탑, 회랑을 각각 세 곳에 세우고 절 이름을 미륵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미륵사는 백제전형 가람배치와 달리 3탑 3금당의 형식으로, 미륵사지 석탑은 창건 당시 세 개의 탑 중 서쪽의 탑이다.


출처 : 블로그 사랑하며 살아가며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탑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이른 시기에 건립된 탑이다.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6층까지 남아 있다. 높이는 약 14.2m이고, 기단의 전체 폭은 12.5m이다. 여기에서도 백제 석탑의 특징인 끝 모서리를 살짝 높인 형태를 볼 수 있다.


이 석탑은 목탑의 구조를 석재로 구현한 최초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1층 탑신부의 기둥은 목조 건축물의 민흘림기둥처럼 두께가 위로 갈수록 좁아지며, 목조 건물처럼 1층 탑신부에는 출입 가능한 문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탑 중앙의 심주석과 마주하도록 되어 있다. 법주사 팔상전이 떠올랐다.

13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석탑은 절반 이상 무너졌고, 일제 강점기에 콘크리트로 보수하였다. 그럼에도 훼손이 심해져 1999년부터 2019년까지 해체 수리를 진행하여 오늘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정성을 들여 보수작업을 한 결과 새로운 석탑으로 돌아왔으나 세월의 때마저 벗겨져 하얗게 변신한 외관은 너무 현대적이라 느껴졌다. 세월의 때가 다시 빨리 덧입혀져야 할 것 같다.


미륵사지 석탑을 둘러보고 옆으로 이동해 미륵사지 동탑을 보았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작업해 9층으로 복원한 탑이다. 부재가 반듯반듯하지만, 기계를 많이 쓴 느낌이라 크게 끌리지는 않았다. 문 안으로 살짝 들어가 심주석까지 보고 나와 주변을 돌며 살펴보았다.


왕궁리 오층석탑 (국보 제289호)

미륵사지 두 석탑을 보고 익산박물관에 들어가 관람한 후 인근 원조미륵산두부집에서 식사를 했다. 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배를 든든하게 채운 후 이번에는 약 6km 떨어진 왕궁리 유적지로 이동했다. 왕궁리는 백제의 마지막 왕궁이 있던 곳으로, 동서 240m, 남북 490m 터에 5층 석탑이 등대처럼 남아 있었다.


왕궁리 오층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얇은 지붕돌과 3단의 지붕받침돌을 갖춘 5층 탑신을 올렸다. 높이는 상륜부를 포함하여 9.3m 높이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8.3m) 보다 1m 정도 높고 두텁다. 제작시기는 백제말에서 후백제까지 다양한 학설이 있다고 한다.


탑의 아름다움은 상하좌우 그 대칭과 비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탑에서도 직선으로 이어지는 반듯한 처마가 그 끝에서 살짝 올라가는 모양새가 참으로 아름답고 보기 좋은 포인트다.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쳐서 만들었음에도 어찌 이리 균형이 맞는지 감탄하게 된다.


왕궁터를 살펴보고 끝으로 백제왕궁박물관을 관람했다. 흔히 백제의 미(美)를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어디 이 표현만 어울릴까. 이날 본 두 국보급 석탑은 백제 예술의 화려함과 웅장함, 그리고 빼어남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재라는 생각을 하며 이날 답사를 마쳤다.


출처 : 국가유산포털, 책 ‘국립익산박물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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