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장엄구는 불교미술의 최고 공예품

미륵사 서탑 사리장엄구,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by 포데로샤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이거 너무 이쁜 공예품이잖아.'


1월 초,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를 보는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청동제사리합 안에 은제사리호가, 은제사리호 안에 동사리기가 들어가는 다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각각의 사리기도 앙증맞게 이쁘지만 셋을 세트로 보면 정교하고 빼어나다. 지금으로부터 1450여 년 전인 정유년 577년에 이렇게 아름답고 세련된 사리장엄구가 탄생했다니 백제 장인의 손기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의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유홍준 교수 쓴 <외국인을 위한 한국미술사 : 불교공예> 편을 보니, 사리장엄구는 불교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공예품이라고 평가했다. 공예란 무엇인가? 쓸모 있으면서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기술이다. 당대 최고의 수준의 공예기술과 금은동 최고의 재료와 거기에 성스러움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왜 사리장엄구를 최고의 불교공예라 평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처의 몸에서 나온 결정체를 진신(眞身)사리, 부처가 설법한 내용을 기록한 경전을 법신(法身) 사리라고 한다. 그리고 부처의 사리와 이를 봉안하기 위한 다중 구조의 사리기(외함, 내함, 사리병 등)와 각종 보물과 공양구를 포함한 것을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라 한다. 다들 진신사리를 모시려 했지만 그게 어디 한없이 나오는 것이던가. 나중에는 여의치 않아 보석이나 불경, 불상을 대신 봉안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리장치'와 관련된 국보급 유산은 총 7점이다. 사리기로는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부여)와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김천) 등 2점이며, 사리호로는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사리장엄구로는 익산 미륵사 서탑 사리장엄구,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등 3점이다.


왕궁리 5층 석탑 사리장엄구(구 국보 123호)


1월 마지막 일요일, 국보급 사리장엄구를 보러 익산에 갔다. 미륵사지 절터 옆에 국립익산박물관이 있다. 역사 유적지 안에 위치한 현장 박물관이다. 박물관에서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와 왕궁리 5층 석탑 사리장엄구를 한 번에 다 볼 수 있다. 미륵사지를 먼저 둘러보고 박물관 입구로 들어가 상설전시관인 1 전시실로 갔다. 익산백제실. 이곳에서 왕궁리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를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왕궁리 5층 석탑 사리장엄구는 1965년에 출토되었다. 기단 중앙 심주석 윗면에 '品' 자 모양의 세 개의 네모난 홈이 있었는데, 이중 아래 구멍(동쪽)에서 금동여래입상과 청동방울이 나왔고, 1층 지붕돌 위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었는데 동쪽 구멍에서 금제사리내함과 유리제사리병이, 서쪽 구멍에서 금강바라밀경을 새긴 은판을 안치한 금동제상자가 나왔단다. 이 모두가 사리장엄구로 하나로 묶여 있다.



직접 보았을 때 드는 생각은 이랬다.


첫째, 이 당시에 유리병이 있었구나.

둘째, 옛날에도 금이 최고였네. 반짝반짝 빛난다.

셋째, 어떻게 이렇게 하나하나 섬세하게 새길 수가 있었을까. 글자도 그렇고.


아내와 아이는 다음 전시실로 이미 넘어가 있어서 사진 몇 컷 찍고 나도 따라 2 전시실인 미륵사지실로 이동했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구


미륵사 서탑은 1999년부터 2019년까지 해체 수리를 했다. 2009년 1월 1층 탑신의 심주석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삼중의 사리장엄과 더불어 장신구와 유리구술 등 다양한 공양품이 9,900여 점 안치되어 있었다고 하며, 무엇보다도 사리봉영기가 발견되었다. 그간 선화공주가 백제 무왕의 왕비인 줄 알았는데, 백제 고위관료인 사택 씨의 딸이 왕후로서 절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했다는 기록이 나와 역사를 바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미륵사 서탑 사리장엄구도 마찬가지로 금동제사리외호 안에 금제사리내호, 금제사리내호 안에 유리제사리병이 안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리를 담은 유리제사리병은 풍화가 심해 깨져버린 상태라 원상태를 추정하긴 어렵다고 한다. 금제제사리외호만 보더라도 꽃무늬와 구슬무늬가 빼곡히 새겨져 있고, 색색들이 공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눈이 즐거웠다.


이로서 국보급 백제 사리장엄구를 모두 둘러보았다. 일생에 한 번 봤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의미 있는 발걸음이었다. 신라가 만든 사리장엄구는 백제와 또 다르다. 상반기에는 경주에 갈 계획이 있다. 그때에는 신라의 국보급 유물을 보고 또 어떻게 창의적으로 공예품을 제작했는지 감상하려고 한다.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답사다. 그렇게 하나씩 우리 선조들이 만든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경험하고 있다.



참고 및 인용문헌


1. 최응천, 한국 사리장엄구의 변천, 국가유산청, 2016

2. 유홍준, <<외국인을 위한 한국미술사>>, 눌와, 2025, p184

3. 심영옥, <<한국미술사를 보다 2>>, (주)리베르, 2015, p290

4. 강우방, <<한국 불교의 사리장엄>>, 열화당, 1993

5. <국립익산박물관>, 2020


https://www.khs.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32426&bbsId=BBSMSTR_1008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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