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by 포데로샤


이번 설 명절에는 안성에서 부모님과 하루를 보내고, 천안에서 처가 식구들과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남들 아래로 고향갈 때 나는 차로 올라가고 복귀할 때 나는 내려가니 길막힘이 없다. 차로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들려서 볼만한 국가유산을 찾아보았다. 천안시 성환읍에 있는 국보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구 국보 7호)>가 레이다에 들어왔다. 천안시에 소재하는 유일한 국보. 아직 못 본 문화재라 마음은 설레기 시작했다.


친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안성을 떠나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를 찾아 길을 나섰다. 30분 정도 시골 도로를 달려가는데 거의 다다랐는지 티맵이 길을 꺽어 접어들라고 안내했다. 농작지 옆으로 차 한 대 지날 수 있는 좁다란 길을 5백여 미터 달려가니 길 끝에 천안 봉선홍경사 간판과 보호각, 그리고 주차장이 나왔다.(큰 도로 옆에 있으나 최단거리로 알려 줌) 주변에 다른 건물 없이 한적했고, 그 시간 우리 가족 말고는 찾은 사람도 없었다.


봉선홍경사. 이름이 특이하다. 이름 가지고 장난 치는 건 아닌데... 개그우먼 신봉선 님이 떠오르는건 뭐지. 아무튼. 봉선홍경사는 고려 현종 12년인 1021년에 세워진 절이다. 현재는 없다. 봉선(奉先)은 선조를 받든다는 말로, 돌아가신 아버지 안종(安宗)의 뜻을 받들어 이 사찰을 세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홍경(弘慶)은 경사를 널리 베푼다는 말로, 사찰을 세워 여러 사람들에게 혜택을 베푼다는 뜻이 담겨 있다.



갈비(碣碑)는 일반적인 석비보다 규모가 작은 것을 말한다는데, 이 비는 받침돌과 머릿돌을 모두 갖추고 있어 석비의 형식과 다르지 않다. 이 갈기비는 봉선홍경사를 세운 지 5년이 지난 고려 현종 17년(1026)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문은 해동공자로 불리던 고려시대 최고의 유학자 최충이 짓고, 서예가 백현례가 글씨를 썼다고 한다. 새긴 걸 보면 아주 정교하다.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건립 배경이 나타나 있다고 한다.

“고려의 제8대 임금 현종이 부왕 안종의 평소 소원이었던 불법을 널리 전파하고자 했던 뜻을 이어받아 당시에 수초가 우거지고 도적이 자못 많이 출몰하여 행인을 괴롭히던 이곳[옛 직산현 성환역 주변]에다 병부 상서 강민첨 장군과 김맹을 별감사로 삼아 현종 8년(1016년)부터 현종 13년(1021년)의 만 5년에 걸쳐 법당, 행랑 등의 200여 칸의 건물과 서쪽에 80칸의 광연 통화원 건물을 지어 길가는 나그네와 공무 수행의 사람들에게는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고 말과 소 등에게는 마초를 제공하여 편의를 도모하였다.”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법당과 행랑, 통화원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비석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받침돌은 거북이 아닌 용머리로 되어 있다. 그런데 하늘을 나는 상상 속의 용 같지는 않게 생겼다. 그것 보다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공룡의 얼굴이다. 공룡도 용 아닌가? 내 눈에는 이를 드러낸 티라노사우루스 같다고 할까. 머리가 앞을 향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는 것도 특이하다.


거북이는 꼬리가 없는데, 용이라 꼬리를 만들어 놓은 것일까. 뒤로 돌아가니 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또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갈기비 지붕돌 위 대들보(?)에 구부린 손가락 같이 뾰족한 장식 같은 게 12개 정도 박혀 있다. 새가 갈기비 위에 자꾸 자리를 잡아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어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갈기비를 몇 바퀴 빙빙 돌면서 보고 또 보았다.


긴 시간 이 곳에 머무르지는 않았다. 봄에는 유채꽃을 주변 가득 심어 보기 좋다는데, 겨울이라 황량한 상태라 볼 게 있지는 않았다. 아쉬운 점은 보호각이 둘러쳐져 있어 안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는 것과 문화관광해설사 부스라도 있었으면 궁금한 걸 물어보았을텐데 없었다는 것. 천안 8경 중 하나라고 하는데 관광지로서 가꿔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답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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