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주박물관 국보 (1)
무령왕은 백제 25대 왕이다. 462년(개로왕 8년)에 태어나 40세인 501년에 왕위에 올라 523년에 사망했다. 재위 동안 웅진 천도에 따른 내부 혼란을 종식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여 경제와 민생을 안정시켰으며, 고구려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항하여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중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등 백제 중흥기를 이끈 왕이었다고 한다.
백제의 웅진이 오늘날 충남 공주시다. 많은 백제 문화유산이 이 도시에 남아 있다. 최고급 유물인 국보만도 15점이 있다. 이중 마곡사 오층석탑, 갑사와 신원사 괘불탱 각각 1점을 제외한 12점이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을 제외한 국보 11점이 송산리 무령왕릉에서 나왔으니 "정말 무령왕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싶을 정도다.
지난 일요일, 포근한 봄날씨에 집에 있기가 아쉬웠다. 아내에게 "공주박물관에나 갈까?" 제안했더니 좋다고 했다. 다녀온 지 2년은 된 것 같다. 아내는 박물관에 가는 것도 좋지만, <건축탐구 집>에 나오는 임형남, 노은주 두 부부 건축가가 지었다는 공주 한옥 철학서점 <오래된 질문>에 가고 싶다고 했다. 박물관 보고 가면 되니깐. 그렇게 집에서 50분을 운전해 국립공주박물관에 도착했다.
공주박물관은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최근 다녀온 박물관 중 부여박물관은 '백제금동대향로'가, 익산박물관은 '사리장엄구'가 대표 유물이었다. 그렇다면 공주박물관은 무엇이 대표 유물일까? 바로 무령왕릉 석수(武寧王陵 石獸)다. 진묘수(鎮墓獸)의 하나라고 한다. 박물관 앞마당에도, 전시실(웅진백제실) 입구에도 무령왕릉 석수는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해 주었다.
석수는 궁전이나 무덤 앞에 세워두거나 무덤 안에 놓아두는 돌로 된 동물상이다. 왕릉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무령왕릉 석수는 무덤 통로 중앙에서 밖을 향해 놓여 있었다고 한다. 높이 30.8cm, 길이 49cm, 너비 22cm 크기에 무게는 48.5kg이다. 입은 뭉툭하며 입술에 붉은색이 칠해진 흔적이 있고, 큰 코에 눈과 귀가 있으며, 머리 위에는 철제 뿔이 붙어 있다. 엉덩이 쪽으로 돌아가 보면 꼬리와 항문까지 표현하고 있어 사실적이다.
무덤 수호 관념에서 만들어진 진묘수로 우리나라에서 최초라고 한다. 특이한 점은 발견 당시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는 것. 도망가지 않고 무덤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단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에서 진묘수를 제작할 때 하던 전통이라고 한다. 지금은 온전한 모습으로 접합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알고 보면 붙은 부위가 새롭게 보인다.
그 옛날 백제인들은 내세를 믿었다. 진묘수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신선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는데, 무령왕릉 석수는 천 년 넘게 무령왕릉을 수호하던 임무를 마치고 이제는 공주박물관을 지키고 있다. 유리관 안에 모셔진 무령왕릉 석수를 사방으로 돌아가며 보았다. 휴대폰을 꺼내 몇 컷 사진을 찍고 다음 국보를 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참고 및 인용문헌
1. 국가유산포털
2. 지역N문화
https://ncms.nculture.org/stonecraft/story/5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