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흙 딱지가 털리면 시발이 되는 것도 있다.

by 차렷 경래

신발

김 경래



제목부터 쓰고 글을 쓰려했지
신발에 대해 쓰고자 했으니
신. 발.이라고


그런데 신발창에는
꺾쇠 모양 흙 딱지가 끼어있고
구닥다리 먼지가 수북한데
홀연히 흙 뭉치가 떨어지는 바람에
신발은 시발이 되고 말았던 거지


깜짝이야
민망함에 누가 볼까 어서 뜯어고치려는데
바로 이 시발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하는 거야


밖으로든 안으로든
매콤한 격정을 그렇게 토하듯 재채기하면서
안 그런 척 입 닦는 것조차
우린 너무 닮은 거지


뒤꿈치는 걸어간 만큼
성숙을 남긴 후 기울고
은 비늘 탱탱하던 표피는
나잇살로 주름 가득함이
우리 모두 사실인 것처럼 말이야.


2000년 이후부터 2020 년까지 바꿔 신은 신발의 수는 10켤레 쯤 된다. 이 년에 한 켤레쯤 되는 것인데, 이 숫자는 2000년 이전 20여 년 동안 바꿔 신은 숫자의 2배에 가깝다.

이전에 어땠을까? 가난했다. 신발이 닳지 않도록 최대한 긴장해야 한다. 제대로 된 신발은 고작 하고 가능한 한 오래 신어야 했다. 잠실에 살면서 성남 모란 시장 리어카 신발을 사러 간 기억이 많다. 하루의 용돈 일 이 천 원, 차비하고 신발 사고, 점심 사 먹으면 없다. 그나마 몇십 원, 혹은 몇백 원 남겨 모인 돈이 싼 신발 사는 데 활용되었다. 그럼에도 착용감은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많이 걷지 않아도 되었다. 서울은 지하철, 버스의 대중교통이 잘 발달해 있다. 그리고, 발품 팔 만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입사 후에는 친구들보다 빨리 차를 샀지만, 그만큼 더 걷지 않았다. 셋째로 싼 신발이라 해도 한국산은 역시 질이 좋아서다. 이 사실은 외국에 와 살아 본 이후 알게 되었다. 한국산 양말을 따라갈 만한 품질을 외국에서 아직 찾아보지 못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민은 광야에 나를 세워 놓는 일이다. 걷지 않으면 안 되고, 먹이를 찾지 않는다면, 죽을 운명으로 숲 속 개떼 하이에나에게 신체를 내 맡기는 꼴이 된다. 신발은 마치 자동차가 이 넓은 땅덩어리에 없으면 안 되는 것과 같은 운행 수단이다. 아니 어쩌면 자동차보다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서구 사회에서 아시아 국가의 교육이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대학을 나와도 무학자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 처지에서 몇 푼이라도 벌려면 아무 일이나 찾아 나서야 한다. 서구가 원하는 학력을 인정받으려고, 직업 교육 혹은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따기 위해 나서야 하는 것도 신발의 활약이 무지하게 필요한 부분이다.

생과 사의 길목에 서보면 온갖 본능이 튀어나온다. 신세 좋을 때, 양반이고, 품격이고, 덕이고, 멋이고, 베풂이다. 먹고사는 문제에 부딪혀 시발을 내뱉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신발은 안다. 시발이 어디서 흙 딱지가 떨어져 그런 신세가 되었는지 알고 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통한의 흔적이 기록된 Dash Cam처럼, 주인의 성공을 만들어 주고 뒤축이 기울 때까지 침묵하고 있다. 흐드러진 날에나, 전쟁 같은 현장에서나 18년의 기록이 신발 안에서 달린다. 어찌 흙 몇 점 떨어진 것과 “시발”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시발에는 그냥 그 외마디 하나로만 판단할 수 없는 깊은 흔적이 숨어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