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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Aug 21. 2023

독설

독설에는 명과 암의 효과가 있어 기대효과를 기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토해냄에 대해서


화로 위에 냄비가 올려져 있다. 뚜껑 덮인 냄비 안의 내용물을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짐작 가능한 순간이 오는데, 바로 불이 지펴지고 열기가 오르기 시작할 때다. 열기로 인해 가끔은 빈 냄비를 태우기도 하지만, 물이 들었다면 끓고, 고체이면 탄다. 결국은 뚜껑이 열리고 내용물이 토설되는 점접이 오는데, 밖으로 나오는 형태에 따라 냄비의 수준이 결정된다.


냄비와 언어

인간의 언어는 냄비에 담긴 내용물의 분출 현상이다. 속에든 내용물 자체는 각각의 존재감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 퍼즐과 같이 서로 짜 맞추어져 성격이라는 독특한 생산물로 발전되기도 한다. 수수께끼를 풀 열쇠가 되기도 하는 반면, 아무도 그 해체법을 모르는 폭발물이 되기도 한다.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대한 반응을 각기 달라서 팝콘 같이 쉽게 튄다거나 뚱허니 타 버리기도 하고, 수증기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냄비는 종류가 다양해서, 스텐 냄비, 밥솥, 가마솥, 철밥통, 전기밥솥도 가능하다. 내용물의 돌출에 대한 경우의 수가 솥이나 냄비의 종류와 재질에 따라 얼마나 다양할지 짐작케 하는 부분이지만, 결국 냄비나 솥은 개인 인격의 형상화다. 속에 쌓인 생각의 내용물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 그 사람의 인격은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된다.


엎질러진 물의 후회처럼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한 경험도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순간 참지 못하여 저지른 어떤 행동이 그럴 것이고, 조금만 참았으면 좋았을, 이미 터져 나온 말이 또한 그렇다. 참지 못하였다는 뜻은, 마음에서는 이미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화학작용을 일으켰음을 전제하고, 이로 인해 최종 분출구를 찾았다는 의미다.


그런데, 폭발의 한계는 인격의 질량과 재질에 정비례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폭발하기까지 시간이 인격이라는 솥의 재질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훈련과 성숙과 언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인격 훈련을 쌓아오며 살아왔을까? 일차적으로 타고난 천성은 너무도 중요하다. 매사에 누구는 잘 참는데, 누구는 불같다. 그렇다고, 전자가 후자 보다 인격이 좋다고 할 근거는 아직 아니다.


그다음 축으로, 처지와 환경과 교육이 그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격 성장에 환경이 중요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식물은 때깔부터가 다르다. 성장한 인격이 윤기가 나고 푸른색을 띤다면 이미 상당한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여기에 교육이 힘을 보태어 인간을 더욱 높은 위치로 상승시키되, 영향력이 막대하다. 말하자면, 배운 사람과 안 배운 사람의 차이 때문에, 이 땅에는 끌고 가는 소수와 통치를 받는 다수로 구분되고 있다.


그러나, 더 엄밀하게 보면, 교육이 성숙에 활동 반경을 넓힌다 해도, 인격 형성에 절대적일 수 없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도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는 천차만별의 적용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덜 배워도 뛰어난 인격이 있는 반면, 많이 배웠다거나 운 좋게 기득권을 취해도 한층 무너진 인격이 주위엔 즐비한 것이 그 증거다.


종교적인 수양의 흔적 또한 이보다 중요하다. 어쩌면 종교의 힘은 인격과 말의 완성을 향한 마지막 단계다. 종교에 귀의하여 전심으로 믿음을 갖는다는 건, 최소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게 된다.


먼저, 인격의 변화다. 추상적인 전재가 추상적이지 않은 모양으로 현실화되는 단계다. 시간을 내고, 발을 움직이고, 관계의 진전이 온다. 작은 변화를 통해 공동체 및 주변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 변화다.


평범하지 않은 한 인물의 변화

성 어거스틴은 회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어머니 모니카의 지속적 기도, 그리고 친구 폰티키아누스와의 극적인 대화 후, 로마서 13장 13절을 읽고  육체적이고 방탕한 스스로를 청산했다. 그의 회심이 가져온 변화는, 그 이후 기독교가 어거스틴의 족적 안에서 움직이고 있를 정도로 큰 변화다. 그리고 이런 회심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화는 지금도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13 -


둘째, 표현의 변화다. 말이 달라진다. 인격 형성의 효과로 인한 생각의 패턴이 바뀌기 때문에 표현력의 차이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행동의 변화만큼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기대할 수 있다. 말은 가끔 행동 보다 힘이 있는 현실이 많이 목격된다. 그 단적인 예로, '욕'이 이젠 가려지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통용되는 것을 본다. 영화가 대표적이다. 욕이 배우를 통해 표현되는 것은 금기사항이었으나, 이제 표현의 자유라든가 일상 언어의 솔직한 대사화의 표방 하에 여러 영화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이를 이상하다 생각지도 않는 문화로 바뀌었다. 긍정과 부정의 가치를 동반한다.




독설 효과


독설은 과연 부정적이다. 사람을 말로 쓰러지게 하고, 깊은 상처를 줄 뿐 아니라, 발설의 당사자에겐 그날 이후 긴 후회를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분노와 오해를 시발로 한 언어의 왜곡 현상이 관계된 사람의 마음에 남길 칼자국은 깊다. 하루아침에 없었던 일로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끊어 넘친 냄비가 입구를 통해 물이 넘치듯, 마음의 한을 독설이라는 것으로 토해낼 수 있다면, 적어도 수많은 사람이 그렇지 못하여 담고 살다가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같은 것은 막을 수 있겠다는 긍정적 측면을 굳이 보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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