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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Apr 10. 2017

백발의 노인에게 듣는 인생 이야기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성경 말씀 중에 상당히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구절이 있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레위기 19장 32절 중)"

경륜과 권위를 상징한다는 흰머리 앞에서 자주 불편해졌던 이유는 어쩌면, 그들의 경륜과 권위로 본인보다 젊거나 어린 사람들을 사랑하고 도우려 하기보다는, 억압하고 휘두르려 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고 도우려 했다고 말하겠지만)

그러나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를 불편하게 했던 분들은 극히 일부였던 거 같다.

"꼰대"라고 불리어지는 분들이 "어르신"에 비해 많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주었던 충격이 너무 크게 기억에 남아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르신"들과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면 내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값진 경험들을 들을 수 있기에,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수많은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사람을 깊게 사귀어 공감하는 대화 자체로 행복을 느끼는 나에게 그분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인생의 조언"을 넘어서, 그 대화 자체로서 "행복"을 느끼게도 해 준다.



2011년 미국 <라이브러리 저널>이 선정한 최고의 책에 이름을 올린 책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칼 필레머는 코넬대학교의 사회학자로서 30년간 "인간학"을 연구해 왔다. 2006년 그는 한 가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000명이 넘는 70세 이상의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을 정리하여 30가지 지혜의 정수로 뽑아내 책을 출간한 것이다.

그는 이 질문들을 통해서 30가지의 조언들을 추려낸다.

결코 두껍지 않은 책으로 요약된 30가지 조언이지만, 그 조언들이 나오기까지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했다. 칼 필레머 교수가 찾아간 70세 이상의 1000여 명의 "인생의 현자"들의 삶을 합해 보면, 8만 년이라는 시간이고, 3만 년의 결혼 생활을 유지해 왔으며, 3000여 명의 아이를 키워냈다. 그렇기에 그 조언들은 하나하나 참 값지다.



예전에 어떤 모임에서 각자의 꿈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고, 나 개인적으로는 너무나도 진지하고 깊은 사고의 시간을 거쳐서 대답한 답이었지만, 듣는 사람들을 내 대답을 듣고 신나게 웃어버렸다.

사실, 농담으로 웃어 넘기기에는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에 너무나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우선, 결혼을 해서, 건강하게 늙어 헤어지지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자녀들과 그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우리 부부의 인생이 "멋지다"라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내가 "멋지다"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가치관이, 나의 자녀들과 자녀들의 자녀들에게 까지 공감을 얻어내는 "멋짐"이 될 수 있는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주 간단해 보이는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라는 것이, 나 개인 자신에서부터, 부부, 가정, 사회 공동체에 이르기까지의 관계들에 관한 어마어마한 것들을 포함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8만 년의 삶을 살아왔으며, 3만 년의 결혼생활 동안, 3000여 명의 아이들을 길러낸 "인생의 현자"들의 목소리에 큰 관심이 갔다. 흔히, 사람들이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목차"라고 한다. 이 책의 "목차"는 아마도 독자가 책을 구매하고 싶게 만들게끔 아주 잘 쓰여 있다. 목차 뒤에 이어지는 본문이 나에게 주는 깨달음이 더 크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매력 터지는 목차 뒤에 이어지는 본문은, 정말 한 구절 한 구절 모두 형광펜으로 쭉쭉 표시를 하고 싶게 만들었다.

짧은 한 문장으로 정리된 30가지의 조언들 보다, 그 조언들이 나오게 될 때까지 "인생의 현자"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와 그 해석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만, 여기에는 우선 그 조언들을 나열해 보고자 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5가지 조언)

1.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라

2. 설렘보다 우정을 믿어라

3. 결혼은 반반씩 내놓는 것이 아니다.

4. 대화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다.

5. 배우자와만이 아니라 결혼과도 "결혼"한 것이다.

(만족스러운 직업을 찾기 위한 5가지 조언)

6. 내적인 보상을 주는 직업을 찾아라.

7. 포기하지 마라! 평생 해야 할 일이다.

8. 나쁜 직업도 최대한 활용하라.

9. 인간관계가 전부다.

10. 자율성을 추구하라

(양육을 위한 5가지 조언)

11.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

12. 깨물면 유독 아픈 손가락, 드러내지는 마라.

13. 몸의 멍은 지워지지만 가슴의 멍은 평생 남는다.

14. 무슨 수를 써서라도 관계의 균열만은 피하라.

15. 자녀와의 관계는 "평생의 관점"에서 보라

(두려움 없이 나이 들기 위한 5가지 조언)

16. 나이 먹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17. 100년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몸을 아껴라.

18. 아직 오지도 않은 죽음을 미리 걱정하지 마라.

19. 관계의 끈을 놓지 마라.

20. 노후의 거처를 계획해두라.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한 5가지 조언)

21. 정직하라

22. 기회가 묻거든 "네"하고 대답하라

23. 더 많이 여행하라

24. 배우자를 고를 때는 신중 또 신중하라

25.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로 지금 말하라

(인생의 현자처럼 살기 위한 5가지 조언)

26. 시간은 삶의 본질이다

27.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다.

28. 걱정은 시간을 독살한다.

29. 오늘 하루에만 집중하라.

30. 믿음을 가져라.



이 많은 조언들 중, 나에게 가장 강하게 다가왔던 몇 가지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들은 걱정과 걱정을 크게 줄여주는 합리적인 상황 파악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안다.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너무도 하찮은 사소한 일 한 가지에 집착하며 걱정하는 것은 전문 용어로 '유동 불안'이라 한다."

"때론 걱정할 만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겠죠. 이것이 합리적인 상황 파악입니다. 상황 파악이 되면 걱정이 아닌 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인생의 현자'들이 말하는 걱정은, 합리적인 상황 파악과는 별개이다.

나는 '합리적인 상황 파악'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대비도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걱정'이었다.

성경 말씀에도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겠느냐? (마태복음 6장 27절)"이라고 말씀하신다.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말씀을 믿고, "걱정"이 아닌 "합리적인 상황 파악에 의한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걱정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다고 해서 걱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비슷하면서도, 참 다르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황금률"이었다.

"그들이 황금률에 빗대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측은지심(Compassion)'이었다. 측은지심이라는 말은 인생의 현자들이 내게 했던 말들은 완벽하게 함축하고 있다. 이 말은 타인을 측은하게 여기는 착한 심성을 의미하며 영어의 Compassion은 라틴어 pati(고통)과 cum(함께)에서 파생된 말로, '함께 괴로워하다.'라는 의미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은 타인과 공감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고,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타인을 힘겨은운 삶의 여정을 걷고 있는 여행자처럼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타인을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대접하게 된다."

예전에, 룸메이트가 나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에게 고민과 상처를 나누면 뭔가 마음이 홀가분해진다고. 그 이야기를 다른 친구에게 했더니, 지은이가 어떤 조언을 해 주었길래 그렇게 마음이 편해졌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런데 룸메 자신도 생각해 보니, 대화 중에 내가 어떠한 조언이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왜 그렇게 마음이 편해졌을까 더 고민해 보니, 그냥 대화 중에, 내가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자신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진심이 전해 져서 그런 거 같다고 했다.

사실, 그 친구의 고민을 들으며 항상 그런 진심이 아닌 적도 많았기에,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참 많이 반성이 되었고,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새물결 플러스라는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 <<그날,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통 앞에서 기독교인은 재빠르게 신정론의 정답을 제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중략) 우리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해답을 주기보다 오히려 침묵과 공감, 경청의 시간을 허용해야 한다. 침묵이 하나님의 위로와 답변을 기다리는 시간이라면, 공감은 고통당하는 사람 앞에서 실제로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슬피 우는 자 앞에서 우리는 그와 함께하는 존재이자 그처럼 아파할 수 있는 인간임을 자각하고, 주객의 구분 없이 모두 하나가 되는 거대한 존재의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고 나아가 우리 자신의 고통이 되는 사건, 그 속에서 고통당하는 자는 홀로 남겨지거나 버려지는 더 지독한 고통에서 해방되어 우리라는 삶의 공간으로 나올 수 있다.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에 함께 머물러 있어주는 일, 함께 울어주는 일, 함께 아파하는 일, 그것이 해답 없는 물음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응답이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며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기독교인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이다."



8만 년이라는 긴 시간을 산 인생의 현자들이 주는 보석 같은 조언들.

그래서 이 책을 "전 세계가 주목한 코넬 대학교의 인류 유산 프로젝트"라고 표현했나 보다.

이제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주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조언을 따라, Compassion을 잊지 않는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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