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연대기 ( 김민석, 새물결 플러스)
아빠 엄마는, 교회에서 만나셨고, 영화 같은 연애 스토리를 남기며 결혼에 골인하셨다.
그래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나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아빠 엄마를 나의 아빠 엄마로 인식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며 자랐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진리'라고 믿으며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가? 나는 정말 구원받았나?'라는 질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질문이 진짜 나의 질문이라고 인정해 버리면, 나의 정체성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깨져버리고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너무나 두려워서, 그 질문을 꽁꽁 싸매 마음 저 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 아주 아주 깊게 묻어 놓았다. 이 질문은 단지 사탄이 나의 믿음을 흔들기 위해 유혹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뱀이 질문했던 것처럼.
그렇게 그 질문을, 혹은 의심을 외면해 버렸었다.
그러나 정말 감사하게도, 삶을 살아가며 부딪히는 많은 일들, 그리고 그 일들을 통하여 내 모습을 조금 더 제대로 바라보게 되면서, 더 많은 질문과 의심과 오해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질문들과 대면하면, 나의 '믿음'이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아, 외면했던 것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씩 용기 내어 그 질문들과 마주 했을 때, 있던 '믿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없던, 혹은 너무나도 미약했던 나의 '믿음'의 상태를 알게 하셨고, 그 믿음이 점점 더 온전해져 가도록 해 주셨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세상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하나하나 풀어가게 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창조론 연대기>>는, 기독교 신앙과 과학 간의 관계를 그린 만화이다. '진화론'과 '창조론', 그리고 창조론 중에서도 '젊은 지구 창조론', '오랜 지구 창조론', '진화적 창조론'등을 청소년인 준이와 수영을 중심으로 풀어 나간다..
'창조론'에 질문을 품은 수영이에게 온유의 오빠이며, 수영의 옛 남자 친구였던 사무엘은 이렇게 말한다.
"창세기는 해석할 필요가 없어. 주신대로,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아니, 왜 그렇게 어렵게 믿으려 하냐고! 진리는 단순해 수영아! 쓸데없는 질문이 많아지면 신앙이 이상한 데로 간다고 내가 말했지? 어? 처음에 순수했던 수영이 모습은 다 어디 간 거냐고!"
수영이는 크게 상처받고, 결국 그들은 헤어진다. 사무엘이 수영이에게 쏟아낸 말들은 수영이의 믿음을 더 굳건히 만들어준다거나, '쓸데없는 질문'을 없애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앙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이었다.
수영이는 상처를 받았고, 그들은 결국 헤어졌다.
다행스럽게도, 수영이에게는 그러한 질문들과 건강하게 마주하시는 아버지가 계셨다.
그래서, 수영이 자신도 질문과 고민을 하며 더욱 성숙해질 수 있었고, 수영이를 좋아하던 준이 역시 수영이와 함께 여러 가지 질문과 고민들을 마주 대할 수 있었다.
온유는, 자신이 믿고 따르던 오빠 조차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당황하며 혼란스러워한다.
그런 온유에게 수영이의 아버지는 로마서 8장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라는 이야기를 한 후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조금 더 용기를 내봐라, 온유야.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그분을 알아가려고 해봐. 하나님은 완전하시지만,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때론 어설프고, 때론 틀리기도 하지. 하지만 틀리더라도, 수없이 틀리고 또 틀리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찾아 나아가는 이들이 결국엔 더 온전한 걸 보게 되지 않을까? 특히 창세기와 과학 같은 쉽지 않은 문제일수록, 자신이 정답을 알려주겠다는 사람들이 훨씬 위험할 수 있단다. 쉽기 않기 때문에..... 손쉬운 해답, 익숙하고 편안한 해석에 끌려가기 쉽겠지만...... 하지만 온유는 질문하는 용기를 내봤으면 한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왜 먹지 말라고 하셨는지 궁금하지 않았을까?
만약에, 왜 먹지 말라고 하셨는지, 이유를 물어보고, 대화하고 교제했더라면, 그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라고 하신 명령보다 중요한, 그 명령을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의도를 알았어도, 그 사랑을 알았어도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이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시리라"라고 유혹하는 뱀의 유혹에 넘어갔을까?
물론, "질문하지 않아서"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었다고 할 수는 없다.
<<거룩한 로맨스>>의 저자는 선악과 사건을 "아담과 이브의 타락은 절도죄와는 다른 것이었다. 사랑에 대한 배신이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욕구가 되었던 아니면 또 다른 어떠한 이유가 되었던, 어쨌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했다. 온전한 사랑의 관계가 틀어졌다.
책에서, 수영이는 친구들과 토론하던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것보단... 피조물이 하나님과의 적절한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선하고 좋다고 평가하신 거 아닐까? 음...... 그러니까, 피조물을 선하다고 하신 건, 그게 하나님께서 만드실 수 있는 최선의 것이어서라기 보단...... 피조물이 하나님의 정한 목적에 응답하기 때문에 선하다고 불린 거 같아. 예를 들어, 아담과 하와는 범죄 할 가능성을 품을 채로 창조되었었잖아? 게다가 순종할 경우에만 죽지 않을 수 있었고. 그러니까 영원히 불멸하는 존재로 지어진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죽도록 지어진 거잖아. 그니까 아담 자체가 완전한 존재로 지어져서가 아니라 아담이 하나님의 목적대로 응답하기 때문에 보시기 좋았던 거지."
<<살아 있는 사랑의 불길>>이라는 책에서 St. John of the Cross는 이렇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창조된 것도,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갖기 위해서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거룩한 로맨스>>에서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이 바로 사랑받는 사람이다."
만약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깊은 친밀한 사귐을 유지했다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사랑받는 사람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 책은 어떤 '창조론'이 '진리'라고 규정짓지는 않는다.
나도, 어떤 창조론이 더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이 있지만,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이 모두는 '진리'가 아닌 '학설'이기 때문이다.
수영이의 아버지가 말했듯, '성경'은 진리임에 분명하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우리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틀릴 수도 있다.
책에서, 주인공 준이의 사촌 누나는 준이와 수영이에게 디모데 후서 3:15-17절(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을 읽어보게 한 후 이렇게 말한다.
"그기 성경이 쓰인 목적이 아이가. 우릴 구원에 이르게 하고 또 구원받은 자로서 온전히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라는 거. 과학 지식이나 미래의 타임라인을 알려 주는 게 성경의 본 목적이 아니라고!"
나의 어떠한 철학이나 사상이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성경을 끌어다 쓰는 경솔한 짓을 하지는 않았던가 되돌아본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던 도마에게 예수님은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27)"라고 하신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는 말씀 때문에, 복된 자가 되기 위해서 보지 못하고도 믿는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믿어지지 않는다고 예수님께 솔직히 말해야겠다.
의심했다고 정죄하며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심을 믿기 때문이다.
친밀한 사귐을 위해서, 내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한, 믿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질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온전한, 처음 창조의 목적대로, 하나님과 깊은 친밀한 사귐을 갖는 사랑받는 자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