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처치

인체를 통해 보는 하나님 나라

by JJ

응급처치(Emergency treatment).

"응급처치"라는 단어를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소나 때에 발생한 외성에 대해서 응급적으로 간단하게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 응급 처치 후에는 의사의 상의가 필요하다."라고 나온다.


응급 처치의 목표는 생명유지, 현상유지, 부작용 억제, 빠른 회복이다.

응급 처치 시 확인해야 하는 것은 의식 유무, 호흡 유무, 맥밥 유무, 상해 정도이다.


아빠는 한동안 매일 저녁 막장 드라마를 보셨다.

KBS에서 하는 별난 가족이라는 드라마인데, 맨날 말도 안 되는 전개에 욕을 하며 나도 모르게 보고 있다.

교통사고 장면. 자신을 대신해 사고를 당해 바닥에 누운 설본부장을 강단희 씨가 끌어안고 오열한다.

나는 말했다. "죽이고 싶어서 저러는 건가?! ㅋㅋㅋ".

드라마의 극적 장면 연출을 위함이었다지만, 너무나 위험한 행동이다.

설본부장 교통사고.jpg "현상유지"는 포기한건가

내가 근무했던 병원에서는 레지던트들을 상대로 여러 모의 상황 실습 교육이 자주 있었다.

교통사고나, 추락사고 환자를 응급실에서 받았을 때를 가정하며 실습하던 날, 교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모든 사고의 첫 번째는 부목이라고.

외상을 당했을 때, 안전을 위해, 목의 부상이 확인되던지 그렇지 않던지 일단 부목을 대야 한다고 하셨다.

응급 처치의 기본 법칙 중 하나다.


이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CPR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심근경색으로 인한 혼절 시 CPR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의료업계에 종사하지 않으시는 분들 중 그 교육을 이수하신 분들도 많이 계신다.

우리 엄마도 내 권유에 따라 근처 대학 병원에서 무료로 이루어지는 강습을 듣고 오셨다.

심정지 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적절한 응급 처치로 뇌에 산소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단순한 몇 가지 동작으로 ( 사실 1분만 해도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그다지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골든타임을 사수하여 귀중한 한 사람의 생명과 그의 삶의 질을 지킬 수 있다.

(아래 대한 심폐소생협회 링크를 걸어 놓는다. 가입하고 로그인하면 각자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서 CPR교육 신청을 하고, 교육 후 교육 이수증을 받을 수 있다.)

http://www.kacpr.org/main.php


"응급 처치"라는 단어 때문에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겠지만.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행동이기도 하다.

뇌졸중. "뇌혈휴 이상으로 인해 갑작스레 유발된 국소적인 신경학적 결손 증상을 통칭하는 말. -위키피디아-". 얼마 전 "좋은 아침"이라는 프로에 누군가 나와 MC들과 게스트들에게 객관식 질문을 했다.

다음 중 뇌졸중 응급 처치로 옳은 것은?

1. 팔다리 주무르기 2. 손 따서 피 내주기 3. 물 먹이기

답은 바로바로! 아무것도 없었다.

뇌졸중으로 누군가가 쓰러졌을 때는, 혹시라도 구토를 하거나 혀가 말려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낮은 베개를 어깨와 목에 걸쳐주고 편안히 눕게 한 후 119 구급대원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다.

저 세 가지는 모두 뇌졸중으로 쓰러진 환자를 더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아무것도 안 할 때가 오히려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나라 안팎으로 여러 가지 사건들이 계속되며 시끄럽다.

이럴 때,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 저렇게 하는 것이 맞다 말들도 많고, 또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이 맞다고 고집하며 싸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분명 응급 상황인데,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일까 아니면 "CPR"일까?


각자 살아가는 현실적인 시간과 상황과 장소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각자가 취해야 할 행동들이 모두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 공동체로서 함께 해야할 일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모든 사람이 모두 동일하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정의 내리고, 그와 반대되는 의견 같다면 무조건 욕하며 싸울 것이 아니라, 인정해 줄 부분은 인정해 주며, 자신이 바뀌어야 하는 부분은 바뀔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찌 되었던, 무엇인가 주장하려면 내가 무엇을 주장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내가 무엇을 주장해야 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언론들과 실제적으로 내가 접하는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그 정보들의 옳고 그름을 최대한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도"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어떤 분들이 "기도"만 하고 있을 것이냐고 비판하시는 것을 볼 때, 어느 부분에서는 그분들의 비판이 공감이 된다. 아마도 그분들이 비판하는 사람들의 "기도"는 어쩌면 "기도"라는 핑계로 자신이 무엇을 하지 않으려는 핑계로 전락한 "기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진짜 "기도"는, 기도 중에 하나님 마음을 알고, 그분의 계획을 알고 (물론, 연약한 인간으로서, 모든 것을 깨달을 수는 없지만), 그분이 무엇을 하게 하시는지 듣고 순종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어쩌면, "가만히 있어라"라고 하실 수도 있고, "나가서 싸워라"라고 하실 수도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에, 홍해 앞에 다 왔을 때,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쫒아오고 있었다. 그런 위급한 상황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을 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창세기 14:13-14)이라고 말했고,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다 위로 손을 내밀었을 때 하나님께서 큰 바람으로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고, 그 마른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가로질러 갔다. 애굽 백성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들을 갈라놓은 구름기둥 때문에 빠르게 쫓지 못하다가, 나중에서야 홍해로 들어왔을 때, 모세가 다시 여호와의 명령대로 바다에 손을 내밀자 물이 다시 흘러 다 바다에 빠져 사망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보고 직접 나가서 애굽인들과 싸우라고 하시지 않았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일으키시고, 그 기적을 체험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하셨다.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이 자신들이 머물던 곳을 침노하여 성읍이 불타고 아내와 자녀들이 모두 잡혀 간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먼저 하나님께 물었다.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사무엘상 30:3)". 다윗이 여호와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았던 것이 이번 한 번만은 아니다. 사무엘하 2:1에서도 전쟁하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물어보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 "기도"할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때"를 알려 주시기도 하고, "나가서 싸워야 할 때"를 알려 주시기도 하고, 어느 때는 "어떤 방법으로 싸워야 할지"까지 알려 주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기도는 사물을 균형 있게 볼 수 있도록 하며, 그것을 개별적인 사물이 아니라 통일성과 상화 관련성 안에서 파악하게 한다. 기도는 우리의 세계관을 변화시켜서 세상에서의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존 메춰리-"


그러나 물론 이것이 기도의 목적은 아니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 했을 때 내가 나의 판단과 경험으로 무엇을 행하여 이루었을 때 올 수 있는 엄청난 위험인 "교만"에서 피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교만함에서 나오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건강하지 못한 비난을 피할 수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공감이 된 유기성 목사님의 페북 글을 공유하려 한다.)

https://www.facebook.com/pastor.yoo/posts/962635730540054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모든 사건들을 갖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내가 변화되며 그분과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갈 수 있다.


리처드 포스터의 [기도]라는 책 중에 이러한 말이 있다.

"처음에는 우리 자신이 당연히 기도의 중심이요, 주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 마음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혁이 일어난다. 천천히 그리고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게 무게 중심이 옮겨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우리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다가 우리가 그의 생활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놀랍고 신비하게도 하나님이 우리 기도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바뀐다. 마음의 변화와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이러한 역사가 이 책의 주요 관심사이다.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김영봉 목사님의 [사귐의 기도]라는 책에는 이러한 말이 있다.

"이렇듯, 바른 기도는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한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


하나님과 올바른 사귐이 이루어지고 지으신 그 목적에 부합하게 살아갈 때, 덤으로 주시는 것은,

올바른 세계관을 갖고 통일성과 상호 관련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올바른 판단도 내리며 올바른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30년간 열심히 살았다. 정말로,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열심 다 부질없더라.

흔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쫓아 열심히 살다가 넘어졌을 때 깨달은 것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위해 내가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내가 얼마나 믿음으로 그분과 동행하며 바라보며 그분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그분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는 것을.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편 131)"


그래서 나는 먼저,

그분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여호와를 바라고자 한다.

그리고, 정의와 공평과 사랑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에 순종 하고자 한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동행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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